<공감사색> - by 강원상
혼돈의 시대를 살아내는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할 책
우린 광장으로 간다
불이 나면 소방서에 연락하고
몸이 아프면 병원을 가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경찰서로 가며
법적으로 부당하면 법원에 간다.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서점을 가고
좋은 지도자를 선출하기 위해 투표소로 가며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공정한 언론을 시청하고
국민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우린 광장으로 간다.
1부 관객과 죄수
노동자의 삶
스무 살의 크리스마스이브.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예고하듯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쉼 없이 떨어졌다.
숨 막히는 대치상황과는 어울리지 않게
온 천지가 하얗게 물들어 갔다.
살벌한 눈빛 교환 후 맞은편
무리가 먼저 도발을 감행했다.
사장 안에 있는거 아니까 비키라고!
이윽고 힘 꽤나 쓸 법한 아저씨가
슬금슬금 다가와 속삭였다.
야, 이번엔 좀 세게 나가야겠다.
우리도 춥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저씨는 우리의
팔짱을 파고들며 대열을 흐트러뜨리려 했다.
대열 사수해!
우리는 즉시 간견을 좁히고
온몸의 근육을 끌어 모았다.
그러자 맞은편 아저씨들이 마치 연쇄추돌
난 차량처럼 일제히 몰려들어 서로를 욱여넣기 시작했다.
뚫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피땀이
떨어지며 눈 위에서 범벅이 된 순간,
문득 폴 라파르그 저서 <게으를 권리>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내가 그대에게 자유를 주노라, 비참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 정도의 돈만 받고 일해서
그대의 고용주를 백만장자로 만들어줄
자유, 그리고 빵 한 조각에 그대의 자유를
고용주에게 팔 자유를 주노라.
고용주는 그대를 열 시간이나 열 두 시간 동안
작업장에 가두리라. 그러고는 그대가 기진맥진해
쓰러질 지경이 돼서야 그대를 풀어주리라.
멀건 죽을 급히 삼키고는 곧바로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을 정도의 힘만 남을 때까지
그대는 작업장에서 일해야 하리라.
그대에게는 결코 팔 수 없는 권리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세금을 낼 권리다.
해고된 노동자와 그들을 막기
위해 채용된 노동자.
그 둘 사이에는 자본이라는 서로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 놓여있었고,
그런 갈등을 만드는 것이 차라리 싸게
먹힌다며 경기를 관전하듯 여유로운
자본가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신과 같았고,
악마로도 보였으며, 아주 가끔 인간처럼 보였다.
그렇게 나는 스무 살에 자본주의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 안경이 절반쯤 부셔지면서 눈 밑을
살짝 찢어놓았고 그 틈으로 피가 온 힘을
다해 나오려 했다. 나는 몹시 화가 났다.
그 아저씨들만 아니었다면 정말 아름다운
화이트 크리스마스이브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학비를 벌기 위해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뛰어들었던
용역직 나는 억울하게 내쫓기기 전까지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사람들을 필사적으로 막은 나쁜 놈 가운데 하나였다.
내가 한 일의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돈 몇 푼 벌기 위해 삶의 터전을 빼앗긴
이들을 더욱 할퀴었다는 자책감과 악덕
자본가의 손에 놀아났다는 분노에 나는
곧 일을 그만두고 군에 입대했다.
10년이 지났지만 그곳 정문에는 아직도
복직을 외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크리스마스이브인 오늘도 하얀 눈이 내리고 있고,
내 눈 밑은 아직 그날을 기억한다는 듯 욱신거렸다.
바오밥나무
요즘 뉴스를 보니 어쩌다가 대한민국이
이 지경에 이르렀나 싶다.
친구에 말에 문득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생각났다.
어린 왕자의 별에는 무서운 씨앗들이 있었다.
바오밥나무의 씨앗이었다.
바오밥나무는 너무 늦게 손을
대면 영영 없애버릴 수가 없다.
뿌리로 별에 구멍을 뚫는 것이다.
결국 바오밥나무가 많아지면
별이 산산조각이 나고 마는 것이다.
결국 파괴된 별은 바오밥나무의 씨앗들을
꾸준히 솎고 골라내지 못한 주인들의 책임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별이 산산조각 나지 않았던
것은 이 땅의 주인들이 뒤늦게나마 바오밥나무를
자르기 위해 톱을 들었기 때문이며 모두가 동참해
나무를 잘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선은 씨앗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미 거대하게 성장한 나무는 제거하는 데
많은 희생이 따르고 별에 상처를 남길뿐더러
상처를 치유하는 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오밥나무의 비극을 막고
대한민국이라는 별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평소 세 가지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첫째, 바오밥나무의 씨앗을 알아볼 줄 아는 지혜와 관심
둘째, 꾸준히 그것을 솎아내고 골라내는 성실함
셋째, 민주주의란 꽃이 피어날 수 있는 기름진 땅을 만들겠다는 신념
태평성대
과거 농경시대에는 궃은 날씨도
왕의 무능이라 탓했다.
그러나 21세기 국민들은 그때보다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 통치자에게
그런 초월적 능력까지 기대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그때의 사람들보다 행복하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태평성대란 어질고 착한 임금이 다스리는
평화로운 세상을 말하며 매우 살기
좋은 시절을 뜻한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대략 4300년 전
요순시대를 태평성대라고 일컫는다.
사마천은 왜 그때를 지목했을까.
요 임금은 자신이 독단적으로 통치할 것을
염려하여 조정에다 북을 걸어두고 누구든
간언할 수 있게 함으로써 늘 스스로를 경계하였고
매우 검소하고 질박하여 초가집에서 생활하였다.
제위 70년에는 흉악한 자신의 아들을 제쳐두고
4악(부족장들)과 상의하여 효성이 지극하기로
유명한 순을 추천받아 그에게 제위를 선양하기로 결정한다.
요 임금에 이어 순 임금의 시대에도 백성들은
생활이 풍요롭고 여유로워 심지어 군주의
존재까지도 잊고 지냈다.
어느 날 요 임금은 민심을 살피려고
암행에 나섰다가 늙은 농부 하나가
길가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한 손으로는 배를 두들기고
다른 한 손으로는 땅바닥을 치며
장단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
일출이작(日出而作) - 해가 뜨면 일하고
일입이식(日入而息) - 해가 지면 쉬고
착정이음(鑿井而飮) - 우물 파서 마시고
경전이식(耕田而食) - 밭을 갈아 먹으니
제력우아하유재(帝力于我何有哉) - 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이랴
땅을 두드리며 부르는 노래라고 해서 이 노래를
격양가라고 한다.
우리는 격양가를 통해 진정한 정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즉 백성들이 임금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조차도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이
실로 위대한 정치라는 것이다.
노래를 들을 요 임금은 크게 만족하여
과연 태평세월이로고 라고 하였다.
이상 <공감사색>이었습니다.
' 국내도서 정보 > 에세이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세이추천]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 by 류시화 (0) | 2017.04.18 |
---|---|
[추천에세이]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 by 김신회 (0) | 2017.04.11 |
[추천 에세이] 오늘도 비움 - by 신미경 (0) | 2017.02.14 |
[추천에세이]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by 사노 요코 (0) | 2017.02.13 |
[추천에세이] 자유로울 것 - by 임경선 (0) | 2017.0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