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통찰법> - by 정인호


예술 같은 비니지스를 원한다면

예술가의 생각을 훔쳐라


예술이든 비즈니스든 지향점은 다르지 않다.

세상에 없던 새로움을 제시하고

남들이 주지 못할 놀라움을 선사해야 한다.


화가들의 삶과 작품을 통해 배우는

비즈니스 통찰법




고통스럽지만 위대한 춤


20세기 서양 미술계를 석권한 피카소에게도

숙명의 라이벌이 있었다.


바로 앙리 마티스다.


피카소는 자신보다 열두 살 많은 마티스와

평생 질투하고, 싸우고, 화해하며 예술적

영감을 주고 받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피카소가 원근법을 

파괴하고 새로운 회화의 제국을

건설한 배경에도 마티스를 빼놓을 수 없다.


마티스의 삶의 환희

VS

피카소의 삶의 절규


마티스는 색채에 일대 혁신을 일으킨 인물이다.

당시 대다수의 화가들은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데셍, 즉 선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마티스는 색채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기고 데셍 대신 색채로 사물을 표현했다.


나무는 빨간색, 사람의 피부는 파란색,

하늘은 노란색으로 칠했다.

대상의 원래 색과 전혀 다른 색체를

강렬하게 사용한 바람에 야수파 화가

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말 그대로 야수처럼 길들여지지 않은

날것의 감정을 표현했다는 뜻이다.


피카소와 마티스의 첫 만남은 1903년 

3월로 추정된다. 당시 피카소는 미국의

시인 겸 소설가인 거트루드 스타인의 초상화를

그리던 중이었다. 그는 스타인의 초상화에 

폴 세잔과 앵그르를 결합시키려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1906년, 마티스도 세상에 점점 알려지기 시작했다.

같은 해 3월 그는 두 번째 개인전을 여는 한편

앙데팡당전에도 작품을 출품했다.

작품 제목은 <삶의 기쁨>이었다.


이 그림은 마티스가 그린 그림 중 가장 

크고 대담한 유화였다. 모든 낯선 작품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던 피카소가 이 작품을

간과했을 리 없다. 철절히 단순화된 소묘와

석판화의 놀라운 독창성이 피카소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 작품에는 예전에 보지 못했던 불안한 에너지

서로 어울리지 않는 형태와 색채, 사물의 역동성이 돋보인다.


짙은 노란색과 빨간색, 보라색이 뒤섞여 양식상 부조화를

이루지만 새로운 미학의 본보기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 그림은 동시대 아르누보 양식의 아라베스크

문양은 물론 선사시대 암각화에서부터 앵그르와

세잔의 구성적인 구조까지 떠올리게 한다.


그림 중앙에 둥그렇게 춤추는 사람들은

그리스의 화병 그림과 중세의 태피스트리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책 장식은 물론

안드레아 만테냐, 앵그르, 고야 같은 

다양한 화가들을 상기시킨다.


과감한 양식을 혼합한 <삶의 기쁨>은 입체적이고

모호하게 대상을 표현했던 피카소에게는 

특히 도발적이었다.


생전 처음으로 피카소는 자신보다 마티스의

그림이 훨씬 관능적이고 자유롭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물론 피카소가 이 사실을

선선히 받아들였을 리는 없다.


그는 <삶의 기쁨>이 가당치 않음을, 자신의

작품이 더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결국 피카소는 1907년 현대회화의 위대한

이정표가 될 작품을 완성해낸다.


이 그름이 바로 <아비뇽의 처녀들>이다.


도시 사창가 여인들의 몸을 각지게 뒤틀고

왜곡함으로써 삶의 어두운 현실을 절감하게

하는 이 작품은 경쟁자인 마티스의

<삶의 기쁨>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어느 한 순간도 상대방을 염두에

두지 않은 적이 없었다. 1905년 스타인 가의

후원을 놓고 처음 겨루었던 순간부터 반목하고

견제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사후에도 계속되었다.


당시 피카소는 이렇게 술화했다.


당시 나와 마티스가 작업하고 있던 것은

무엇이든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 있다.

나는 누구보다 주의 깊게 마티스의 그림을

바라보았고, 마티스는 누구보다 주의 깊게

내 작품을 바라 보았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저항했지만 또한 동시에

서로의 작품세계를 인정했다.


피카소는 자신의 작품에 마티스적 요소를 

종종 차용하곤 했다.


피카소의<기대어 누운 누드>는

마티스의 <푸른 누드>의 자세를 기묘하게

비튼 것이다. 강렬하게 타오르는 색채, 싹트기 시작한

식물과 과일, 율동적인 장시 문양은 모두 마티스가 

좋아하는 장치들이다.


그런가 하면 피카소가 애인 프랑수아즈 질로를 

그린 <여인-꽃>은 <마티스 부인의 초상>을

연상시킬 뿐 아니라 내가 만약 그녀를 그린다면

머리카락을 초록으로 하겠다던 마티스의 말에서

직접 모티브를 얻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마티스는 언제 피카소에게

아이디어를 도용당할지 모른다는 피해의식을

갖기에 이르렀다. 마티스의 말대로 피카소는

매복하고 기다리는 노상강도였다.


그러나 이렇게 분개하 마티스의 초상화에도 

피카소의 입체주의가 깃들어 있다.

잠든 모습을 가까이에서 잡는 구도는 피카소가

즐기는 주제다. 마티스의 1935년 작 <꿈>에서

팔을 괴고 잠든 여인은 피카소의 1931년 작

<노랑머리 여인>을 연상시킨다.


이 둘을 모두 알고 있던 막스 자코브는 마티스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만약 내가 지금과 다른 것을 그린다면

피카소같이 그리고 싶네


이에 막스 자코브는 이렇게 대답했다.


참 묘하군요. 피카소도 당신에

대해 똑같은 말을 했는데요.


그들은 매우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예술세계를 펼쳐나갔다.

서로 간 경쟁을 통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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