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란의 시대> - by 이이화


365일 책을 소개하는

Stories Book입니다.


오늘 소개 드릴 책은

<민란의 시대>라는

역사 서적입니다.


조선의 마지막 100년


홍경래의 난에서 항일 의병 항쟁까지

민중의 시각에서 본 조선의 19세기


차례


제1부 문벌 정치의 등장과 관서 농민전쟁

제2부 성장하는 민중 의식, 계속되는 민중 봉기

제3부 반봉건·반침략의 동학 농민전쟁

제4부 의병 항쟁과 평민 의병장의 등장


학창시절에 한번쯤은 들어본 단어들이

익숙하게 보입니다.


대충 단어와 뜻은 알겠지만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민란의 시대>를 읽음으로써 

한번 더 우리나라의 역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책 표지를 보고 있으면

정말 빠른 시간에 우리나라가

엄청난 발전을 하고 

스마트한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구나

생각이 듭니다.


정조가 죽고 난 뒤 그동안 이룩했던

개혁은 한두 가지를 빼고는 거의

빛을 잃었다.


너무나 허망하게도 반동의

시대가 온 것이다.


먼저 정비순대가 이끈 수렴청정 기간,

이미 계획되어 있던 노비 해방을

빼고는 모든 개혁이 중지되었다.


이어 안동 김씨 중심의 문벌 정치가

들어선 뒤에는 더욱 보수 반등의 

길로 돌아갔다.


이들은 모든 이권을 독점했으며 

기호 지방에 똬리를 틀고 있는 

노론 중심의 붕당정치를 강화했다.


그리하여 영남과 호남, 그리고 

서북 지방의 불만이 높아졌다.


이런 과정에서 홍경래가 주도한

관서 농민 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은 무엇보다 지역 차별에서

유발되었지만 실제로는 문벌 정치의

독점과 비리에 저항한 것이다.


서북 지방 중심으로 전개된 이 

전쟁은 이른바 민란의 시대

여는 신호탄이 되었다.


머리말을 소개 하겠습니다.


19세기는 민란의 시대


역사학자들은 한국의 19세기를 곧잘

민란의 시대였다고 진단한다.


무법과 혼란으로 얼룩진 과도기로

보는 한편,

민중 봉기의 에너지가 분출된 

역동의 시대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1801년 일부 관아 소속의 노비가 

해방된 뒤 명화적을 포함해 

크고 작은 민중 봉기가 골골마다 일어났다.


마침내 1862년 삼삼을 중심으로 

농민 봉기가 세차게 전개되었다.




이 무렵 사람이 많이 몰려 있는

모습을 보면 민란 떼 같다고 표현하는

새 조어가 생겨났다.


한편 이런 시대 배경에는 살반계등 

비밀결사의 활동도 있었고, 

놀이와 연희를 통해 민중 의식이

고양되는 현상도 있었다.


이 시기 민중 봉기의 실상을 제대로

분석하거나 정리한 저술은 드물다.

이보다 앞선 영조와 정조 시대의 

개혁 정치를 정리하고 19세기에

들어 전개된 문벌 정치의 과정을

정치사의 관점에서 분석한

저술들이 있을 뿐이다.


이런 민중 봉기는 조선 후기의

다양한 모순이 뒤얽혀 전개되었지만

직접적 동기는 안동 김씨 중심의

문벌 정치 아래에서 자행된

수탈 체제에 그 원인이 있다.


그동안 역사학자들은 민중 봉기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 소략하게 다루어왔다.


그 이유는 사료의 빈약에서도 있다.


관찰 사료인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에서는 이 사실을 간단하게만 기재하고

민중의 고통은 제대로 전달해 주지 않고 있다.


또 하나 주요한 직접 사료인 

<추안급국안>과 <포도청등록> 등은

죄인 신문 기록이 중심이 되어 있지만

그들의 처지를 거의 기록하지 않았다.


또한 가장 핍박받았던 노비나

백정이 쓴 기록은 전해지지도 

않고 발견되지도 않았다.


정조의 개혁 정치와 의문의 죽음


18세기 조선 사회는 겉으로는 비교적

안정된 것처럼 보였다.


이시기 왕위에 오른 영조·정조는 

각기 긴 재위 기간을 적절하게 구사해

당파 간 세력균형을 시도하면서 탕평책

등으로 왕권 강화에 힘을 쏟았다.


아울러 척족 세력의 등장을 막기 위해

다양한 조처들을 취했다.


정조는 규장각을 설치해 명망 있는

문신들을 근위 세력으로 길렀다.


이들을 당파와 척족 세력의 등장을

막는 방파제로 삼기도 했다.


특히 정조의 조처 중 몇 가지 

정책적 시도는 주목을 끈다.


첫째는 신분제도와 관련된 것이다.

정조는 몇몇 양반 문벌가의 관료 사회

독점을 막기 위해 채제공 등 남인을 

중용하는 안배 정책을 폈고 

양반 출신 서열에게 출사의 길을

열어주었다.


둘째로, 도망친 노비의 추쇄를 막는

등 새로운 조처를 취했다.


또 죄인을 다스릴 적에 심한

인권 유린을 막고 그 규정을 

엄격하게 시행하도록 하는 

정책을 폈다.


셋째로, 토지제도의 개혁에 관심을 기울였다.

정조는 벼슬아치 따위 부재지주들의

토지 확보와 토호의 독점적 대토지

소유에 우려를 표명하고 그 시정과

개혁에 관심을 기울여 현지 수령 및

재야 실학자들의 의견을 수집했다.


넷째, 수령들의 부정부패를 막고자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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