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보지 않은 길 - by 송호근


리셋 코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의

한국 사회를 향한 사회학적 현장관찰기




2016년 알파고의 출현은 충격 그 자체였다.

언론과 미디어, 또는 저명 과학자들이 아무리

웅변해도 한 귀로 흘려듣던 제 4차 혁명의 도래

로봇의 인간 대체가 현실로 절절히 다가온 것이다.


한편 2017년 2월, 한진해운이 최종 파산 선고를 받았다.

조선, 석유화학, 해운 등 중공업을 중심으로 한 한국경제의

일대 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다.


제 4차 혁명의 도래와 미증유의 경제위기 앞에서

대한민국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는가?

정치, 경제를 넘나들며 오늘의 사회 분석에 천착해 온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는 대한민국의 오늘과 내일을

진단하기 위하여 현대차로 향한다.

현대차 그룹의 성장과정은 한국 산업화의 스토리이고,

현대 재벌의 강점과 허점이 고스란히 

한국경제의 내부 구조가 됐다.


송호근 교수의 진단은 결국 사람에 집중된다.

자원과 시장이 전무했던 대한민국에서 현대차가

성공한 배경에는 일단 해 보자는 추친력과 경영전략

노동자들의 의기투합이 있었다. 현대차그룹은 

세계 자동차산업에서 유례없는 성공의 절정에 서 있다.

그런데, 그 성공 요인들을 버려야 새로운 길이 보이는

역설에 직면했다. 마치 한국경제가 그러한 것처럼.



프롤로그

가 보지 않은 길


필자가 산업현장 조사차 울산에 처음 내려간

것은 1981년 이었다. 울산 시내에서 방어진 가는

버스를 타고 족히 한 시간을 달렸다.


야산과 들판을 지났고, 옹기종기 모인 산촌과 어촌을 지났다.

학부 시절부터 산업현장을 두루 다닌 터라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하루 작업을 마친 노동자들이 포장마차와 선술집에 모여

회포를 풀었다. 고향 얘기와 노랫가락이 섞였다.


현대중공업은 당시에도 거대한 공장이었다.

현대차는 중공업에 비하면 작고 초라했다.

1970년대 관리직과 현장직이 각목으로 

맞붙은 노사분규를 몇 차례 치른 현대중공업은

높은 담장에 둘러싸여 있었다.


1981년 당시 총무부장은 조사차 방문한 청년 학도에게

사업장 여러 곳을 친절하게 안내했다.

모두 각자의 작업에 열중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한국의 조선산업을 일군 1세대 노동자들이었다.


현장조사를 마치고 남문고개를 넘자 

현대차가 그곳에 있었다.

포니 생산에 성공한 여세를 몰아

공장 굉음이 산을 울렸다.


몇 년 후, 필자는 미국 유학 시절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다.


보스턴 근교 주민을 먹여 살리던 섬유, 신발산업이

한국으로 이전하자 산업도시는 폐허로 변했다.

무너진 공장들이 즐비한 산업도로에 버거킹

레스토랑이 초라하게 손님을 맞았다.


실업자들이 그냥 앉아 있었다.


동양인을 쏘아보던 경계심 가득 찬

눈초리를 기억한다.


디트로이트에서는 실직 노동자들이 거리에 주차된

일본차를 때려 부쉈다. 일본차에 뒤이어 한국차

엑셀이 상륙했다. 굉음을 울리던 공장

현대차의 역작이었다.


작고 날씬한 한국차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모습에

대한민국 예비역 장교점퍼 차림의 유학생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외국에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되는 법이다.


그러부터 30년이 지난 오늘

현대차그룹은 이제 한국 경제를 떠 

받치는 기둥이 되었다.


현대중공업이 담당했던 그 역할을 오래전에

넘겨받았다. 2016년 봄, 필자는 현대차 울산공장을

시작으로 현장 답사에 착수했다.


세계적 산업도시, 어촌 울산을 한국의 부자도시로

도약시킨 현대차그룹의 성장 유전자와 1980년대

초반 이후의 발전과정을 가감 없이 조명하고 싶었다.


2016년 봄, 현대차 1차 탐방을 마치고 남문고개를 걸어 넘었다.

이번에는 역방향이였다. 현대중공업은 선박시장이 

얼어붙자 몸살을 앓았다.


불황을 대비하지 않은 울산 동구는 쓸쓸했다.

조선업 불황과 대규모 구조조정 여파가 아직

남문고개를 넘지는 않았지만, 언젠간 

현대차를 덮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것은 한국 경제 전체에 밀려오는 쓰나미 일 것이다.


한국은 선진국들이 이미 가 본 길을 따라 

지금껏 달렸다. 최근 겪는 한국 경제의 심각한

침체현상은 가 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지 

못한 쓰라린 대가다.


공짜는 없다.


현대차 역시 세계 굴지의 자동차 메이커가

걸어온 길을 착실히 따라잡아 정상에 우뚝 섰다.


이제부는 가 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탐험은 시작됐고 길은 흐릿하다.

한국 경제처럼 말이다.



제1부

한국의 성장 유전자


chapter 1

쓰나미는 도둑처럼 온다


땡큐, 알파고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 그 세기적 드라마가 

개막된 날 필자는 우연히 그곳에 있었다.


특급호텔이 세워진 광화문 네거리 그 자리는

고등학교 시절 청춘남녀가 울렁거리는 마음으로

미팅을 하는 빵집이었다.


다방이 19금인 시절, 교복 차림의 남녀 학생이

한없이 재잘거리던 곳이었다.


그 맛있는 고로케와 도너츠에는 손도 

안 댄 채 요즘 말로 포스를 연출하느라

점잔을 빼던 곳, 현학적 언술로 여학생을

유혹하는 데 실패하곤 쓸쓸히 돌아서던 

빵집이 그곳에 있었다.


그 농업사회 시절 추억을 반추하며 호텔 로비로

들어섰는데 기자와 카메라맨이 한가득이었다.


웬일? 그때서야 알았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그곳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을 필자가 참석한 오찬회의는

온통 알파고 얘기로 서둘러 끝났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몇 층 아래에서

특이한 바둑대회가 새로운 문명사를 예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파고가 세간에 알려지기 전까지 사람들은

그가 중앙처리장치 1,202개와 그래픽처리장치(GPU) 176개를

동시에 구동하는 거대용량 두뇌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


바둑을 잘 모르는 필자도 그랬다.


제까짓 게, 감히 이세돌 9단을 넘보다니

그런데 알파고는 벌써 16만 개 기보를 학습한

종합정보를 바탕으로 최대 40수 앞을 내다보는

바둑 고수였다. 정책망의 연산능력과 가치망의 

판단능력이 알파고의 핵심능력이자 딥러닝이

발생하는 파워플랜트다.


딥러닝이란 입력한 수많은 데이터를 종합해

일종의 패턴을 발견하고 스스로 추론하고

판단을 내리는 자체 학습과정을 일컫는다.


기계가 알아서 학습하고 가치판단을 내리는 현상을

총칭해 머신러닝이라 하는데, 딥러닝은 그것의

한 유형인 셈이다. 그러니 알파고가 프로기사의

예상을 넘어 이상한 수를 둔 것은 당연하다.


알파고가 바둑계를 한바탕 휘젓고 가버린 

이제는 알았다 그것은 악수가 아니라 묘수였고

이세돌 9단에게는 비수였다는 것을 말이다.


인간 고수 이세돌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이세돌 9단이 둔 4국 78수는 알파고의 

정책망과 가치망을 뒤흔든 비수였는데

알파고는 끝내 혼수상태에서 회복하지 못했다.


인공지능의 허점을 파고든 신의 한 수였다.


그럼에도 이 세기적 대국 후에 알파고는 중국의

커제 9단 바로 아래, 세계 바둑 랭킹 2위에 올랐다.

이른바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미국의 제리 캐플런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이렇게 비유했다.


당연히 알파고가 이기죠. 그건 마치 말과 자동차를

두고 누가 빨리 갈지 비교하는 것과 다름없어요.

그가 덧붙였다.


그렇다고 알파고가 사람보다 지적 능력이 뛰어나거나

똑똑하다고 말할 수 없어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캐플런 교수의 말처럼, 절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국 이전에 이세돌이

이기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기대는 감성의 산물이다.


기계가 인간을 이기면 안 된다고 하는

가치망이 작동한 결과다.


인간의 뇌에서는 가치망이 정책망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무시한 판단이다.

인간의 뇌세포는 약 1천억 개, 연결고리인 

시냅스는 100조 개에 달한다.


그런데 중간마디가 고작 830만 개인

알파고가 이겼다는 사실은 인간 뇌에서

셈 능력이 차지하는 부분은 아주 작고

나머지는 감정, 이성, 느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팽팽한 대접전의 관전 포인트는 제각각이었다.

공학자들은 알파고가 멋지게 해낼 것을 은연중 염원했다.

과학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기에.


역으로 인문학자들은 인간 이세돌이 저 무심하고

오만한 기계를 무참히 굴복시키기를 원했다.

프로기사들은 바둑계의 자존심을 지켜 주기를 갈망했다.

어떤 해설자는 이세돌이 4국에서 승리하자 벅찬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사회학자인 필자는 알파고의 표정이 어떨까를

쓸데없이 궁리했는데 끝내 떠오르지 않았다.

고차원 알고리즘으로 프로그래밍된 연산기계였을

뿐임에도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렸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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