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워크> - by 칼 뉴포트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능력이

당신의 가치를 만든다.

오래 일하지 마라, 깊이 일하라

강렬한 몰입, 최고의 성과

딥 워크는 지식 기반

경제의 필수 능력이다.




딥 워크란 인지능력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완전한 집중의 상태에서

수행하는 직업적 활동, 딥 워크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능력을

향상시키며, 따라하기 어렵다.


<서문>

탁월한 성과의 비밀


스위스 장크트갈렌 주, 취리히 호수의

북쪽 기슭에 볼링겐이라는 마을이 있다.

1922년에 정신과 의사인 카를 융은

은신처를 지을 곳으로 여기를 골랐다.

그는 단순한 형태의 2층짜리 돌집을

짓고 타워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집에 명상실을

두는 관습을 본 그는 타워에

집필실을 추가했다. 융은 이 공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집필실에서 나는 혼자다.

열쇠는 항상 내가 가지고 다닌다.

누구도 내 허락 없이 그 방에

들어가지 못한다.


저널리스트 메이슨 커리는 리추얼에서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융이 일하는

방식을 소개했다. 그 내용에 따르면

융은 아침 7시에 일어나 든든히 아침

식사를 한 후 두 시간 동안 집필실에서

방해받지 않고 글을 썼다. 오후 시간은

명상을 하거나 마을을 산책하면서 보냈다.




타워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밤이 되면 석유 램프로 불을 켜고

벽난로로 난방을 했다. 취침 시간은

10시였다. 융은 타워에서 얻는 안식과

재생의 느낌은 처음부터 아주 강렬했다.

라고 말하고 있다. 타워를 별장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당시 융의 상황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터를 사들인 1922년에

융은 휴가를 떠날 형편이 아니었다.


그는 1년 전인 1921년에 심리 유형을 발표해

한때 친구이자 멘토이던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사상과 자신의 사상이 지닌 차이점을

확고하게 들어냈다. 1920년대에 프로이트와

다른 견해를 표명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융은 책의 논지를

입증하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고

후에 분석심리학으로 불리게 될

새로운 학설을 구축하고 뒷받침하는

논문과 저서들을 써내야 했다.


융은 취리히에서 강의와 상담을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이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바쁜 생활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무의식을 이해하는

방식을 바꾸고 싶어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숨가쁜 취리히의 도시 생활

에서 벗어나 더 깊고 신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융은 일에서 

탈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을 

진전시키기 위해 볼링겐에

안식처를 만들었다.


딥 워크는 현재의 지적 역량에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가치를 짜내는

데 필요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심리학과

신경과학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 진행된

연구를 통해 능력 향상시키는 데에도

딥 워크에 따르는 정신적 건강 상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안다. 다시 말해서

딥 워크는 20세기 초의 정신의학처럼

높은 지적 능력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데 필요한 요소였다.


딥 워크, 즉 심층적 작업이라는 용어는

내가 만든 것이며, 아마 융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 그의

행동은 그가 근본적으로 딥 워크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융은 딥 워크를 촉진하려고 숲속에

돌집을 만들었다. 딥 워크에는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금전적 비용이 들었다.

또한 당면한 일들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취리히와 볼링겐을 오가느라

진료 시간을 줄여야 했다. 메이슨 커리가

쓴 바에 따르면 융은 자신에게 의지하는

환자들이 많았지만 안식의 시간을 갖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딥 워크는 우선하

기에 부담스러웠지만 세상을 바꾸겠다는

그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실로 멀고 가까운 과거에 활동한 영향력

있는 인물들의 삶을 조사해 보면 딥 워크에

헌신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가령 16세기의 수필가인 미셸 드 몽테뉴는

융보다 앞서 대저택의 돌담을 지키는 남쪽

탑에 서재를 마련해 글을 썼다. 마크 트웨인은

여름을 보내던 뉴욕의 퀘리 농장에 있는

오두막에서 <톰 소여의 모험> 중 상당

부분을 집필했다. 이 오두막은 본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가족들은 나팔로

식사 시간을 알렸다.


후대로 오면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도인

우디 앨런이 있다. 그는 1969년부터

2013년까지 44년 동안 마흔네 편의

영화를 집필하고 연출하여 스물세

번이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

미학적 생산성 측면에서 엄청난

양이 아닐 수 없다. 이 기간에

그는 컴퓨터를 쓴 적이 없다.

그 대신 모든 작품을 전자 기기의

방해를 받지 않고 독일제 올림피아

SM3 타자기로 완성했다. 앨런처럼

컴퓨터를 거부한 다른 인물로 이론물리

학자인 피터 힉스가 있다. 그는 너무나

단절된 환경에서 연구 작업을 한 나머지

노벨상을 받았다는 발표가 난 후에도

기자들이 소재를 찾을 수 없었다.


다른 한 편 조앤 롤링은 컴퓨터를 사용하지만

널리 알려진 대로 해리 포터 시리즈를 집필

하는 동안에는 소셜 미디어를 끊었다.

당시 관련 기술이 부상하고 미디어 인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롤링이 <캐주얼 베이컨시>를 쓰던 2009년

가을이 되어서야 직원이 대신 트위터 계정을

열었다. 1년 반 동안 그녀가 올린 트윗은

이것이 유일하다. 


-이건 제가 직접 쓰는 글이지만 지금은

펜과 종이가 더 좋아서 아마 자주

올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물론 딥 워크는 역사적 인물이나 전자 기기를

꺼리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 대표 빌 게이츠는 널리

알려진 대로 1년에 두 번 생각 주간을 가진다.

이 동안 그는 홀로 머물며 책을 읽고

원대한 생각을 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신생

기업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스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된 인터넷의 조류라는

유명한 글을 쓴 시기도 1995년의 생각 주간이었다.


이상 <딥 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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