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의 소원> - by 톤 텔레헨
고슴도치는 침대 밑 어둠 속에서 누워 있었다.
여기가 제일 안전해, 외롭지만 안전해
예민하고, 겁 많고, 생각은 더 많은 고슴도치가
내미는 작은 손 조금 외로워도, 조금 불안해도,
그런대로 조금은 행복한 이야기
먼저 다가가는 것이 두려운 세상의
모든 소심이들을 위한 이야기
에쿠니 가오리, 다니카와 슌타로,
오가와 요코 등 일본 문단의 극찬을
받은 <고슴도치의 소원>
저자인 톤 텔레헨을 소개하겠습니다.
1941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났으며
위트레흐트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의사로 일하면서 다수의 시집을 발간했고
1985년 다람쥐가 주인공인
<하루도 지나지 않았어>를 발표하면서
동화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97년 테오 티센 상을 수상
네덜란드 최고의 동화 작가로 자리매김했으며
<천재 의사 데터 이야기>는 2004년 오스트리아
청소년 어린이 문학상을 받았다.
텔레헨은 이해하기 어렵고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의 내면을 철학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작품들로 폭넓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아 왔다.
동화와 시, 우화를 발표해 수많은 상을 수상했으며
일반적인 동화에서는 볼 수 없는 기묘한 주제를
철학적으로 다루어 성인들에게도
많은 공감을 받고 있다.
<고슴도치의 소원>
1부를 소개하겠습니다.
가을이 저물어 가는 어느 날
고슴도치가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그는 혼자였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누군가 그의 집을 지나가다.
아, 여기 고슴도치가 살지 않나?
생각하면서 문을 두드리더라도
고슴도치는 잠을 자고 있거나
문을 열까 말까 너무 오래 망설이는
바람에 그 누군가는 다시 가던 길을 가 버렸다.
고슴도치는 유리창에 코를 누른 채 눈을 감고
아는 동물들을 모두 떠올려 보았다.
누군가의 생일도 아니고 별다른 이유도 없이
그냥 서로의 집을 찾아가는 이들이었다.
그들을 한번 초대해 보면 고슴도치는 생각했다.
고슴도치는 이제껏 그 누구도
초대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눈을 뜨고 뒷통수에 솟은 가시 사이를
긁적이고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편지를 썼다.
-보고 싶은 동물들에게
모두 우리 집에 초대하고 싶어
고슴도치는 펜을 물고 뒷머리를 다시
긁적이고는 그 아래 이어 적었다.
하지만 아무도 안 와도 괜찮아.
고슴도치는 이마를 찡그렸다.
동물들이 이 편지를 읽고선 고슴도치는
누가 자기 집에 오는 걸 절대 바라지
않을 텐데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아니면 빨리 당장 가 보자.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바뀔지도 몰라
고슴도치는 항상 뭔가 다른 걸 원하잖아
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모르겠다.
고슴도치는 편지를 찬장 서랍에
넣어 버리고 고개를 저었다.
편지는 안 보낼 거야.
지금은 아니야.
고슴도치는 다시 창가에 앉아 이 두 단어를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은 그리고 아니야.
이 두 단어가 머릿속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지금은 가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니야는 자로 잰 듯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다.
고슴도치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일 것 같았다.
아니야가 지금을 껴안고 춤을 추었다.
그들은 서로에게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열리고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잠깐인 것 같았다.
잠깐의 외투가 뒤로 펄럭거려서 알아볼 수 있었다.
잠깐은 지금과 아니야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같이 춤을 췄다.
고슴도치는 한숨을 쉬었다.
그때 또 다른 무언가가 갑자기
집 안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
그럴 리 없어. 그럴 리 없어.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한참이 지나고 잠깐은 나갔다.
그다음에 쭉이 솜텀을 넣어
두터운 겨울 외투를 입고
모자를 쓴 채 지금과 아니야 사이에
다시 끼어들었다.
고슴도치는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들은 춤을 추며 고슴도치에게
다가와서는 그의 머릿속을 통과했다.
그들은 고슴도치가 함께 춤을 추길
바라는 것 같았고 게다가 다른 것도
뭔가 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고슴도치는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탁자 위로 뛰어오르더니
점점 더 빨리, 그리고 점점 더 격렬하게 춤을 췄다.
고슴도치는 더 이상 바라볼 수가 없었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눈을
뜨려는 순간, 쭉이 사라졌다.
지금과 아니야는 탁자에서 내려와 어쩔 줄을
모르며 서 있었다. 그러곤 서로를 바라보았다.
계속 출까?
지금이 눈썹을 추어올렸다.
그는 정말로 계속 춤을 추고 싶었다.
하지만 아니야는 고개를 저었다.
요란한 소리가 들리고 문이 다시 열리더니
어쨌과 든이 들어왔다.
그들은 흥분해서는 시끌벅적하게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러 댔다.
둘 다 머리엔 이상한 빨간 깃발을 달고 있었다.
어쨌과 든이 지금과 아니야를 껴안는 순간
시끌벅적한 소음이 멈췄다.
그리고 어쨌과 든, 지금과 아니야 넷이서
조용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고슴도치의 방이 어두워졌다.
어쨌든 지금은 아니야.
어쨌든 지금은 아니야.
어쨌든 지금은 아니야.
춤추는 단어들을 어둠 속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고슴도치는 단어들이 계속 춤을 추면서
환하게 빛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함께 껴안고 춤을 추는 그들이 없으면
이곳은 다시 깜깜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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