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 by 이유


365일 책을 소개하는

Stories Book입니다.


오늘 소개 드릴 책은

<커트>라는 

문학/한국 소설 도서입니다.


대체 날 어떻게 찾아낸 겁니까?

당신이 거기 있었잖아요.


꿈에서 현실로 현실에서 다시 꿈으로

갈 곳 없는 세상, 스스로 길이 된 사람들



낯선 아내


잠복근무 중 잠깐 집에 들렀다가

현관에서 낯선 여자를 봤다.

나는 황급히 돌아섰다.


뭐야, 오자마자 또 나가는거야?

익숙한 목소리였다. 나는 현관문 손잡이를

잡은 채 여자를 돌아봤다.

분명 모르는 여자다. 아닌가?


기겁을 한 여자, 그러니까 내 아내 손에

이끌려 신경정신과엘 갔다.

젊고 빠릿빠릿해 보이는 의사는

안면인식장애 같다고 했다.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증상으로

봐서 그렇다는 것이다.


들어보셨죠? 뇌에서 얼굴을 인식하는

기능이 고장 났다고 보시면 됩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 병에 걸친

채로 살죠. 의사에 말에 아내는

어처구니없어했다.


몇 달 전 쇄골뼈가 부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도 담담했던 그녀가 나보다

더 흥분했다. 선생님 이 사람 직업이 뭔지 아세요?

형사에요. 사진에서 얼핏 본 사람도

알아보는 사람이라고요.


정신적 충격 때문일 수 있다고 의사는 설명했다.


그럴 만 한 일이 있습니까?

의사가 물었다.


그런 일이야 늘 있죠.

나는 대꾸했다.


심리 치료를 받아보는 것도 방법이라는

의사말에 나는 아내 손목을 끌고 일어섰다.


그는 내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병이 계속 진행되면 거울 속에 비친

자신도 못 알아보게 될 겁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나불대는 입술을

낚아채 수갑으로 채워 두고 싶었다.




어때요, 매번 처음 보는 사람이라는 건?

함께 잠복근무 중인 지모가 보인 

반응은 깜찍했다. 잠시 사태의 

심각성을 잊고 나는 장단을 맞췄다.


옆에 누운 여자를 보고 깜짝 놀랐지.

잠자리도 새롭더라니까.

지모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나를 봤다.

매번 뉴페이스인 거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사람을 어떻게 구분하죠?

지모가 물어봤다.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한테

감사할 따름이지.


비장한 투의 내 말을 

지모는 무시했다.


키가 큰지 작은지, 체격이 어떤지,

헤어스타일이나 안경,

뭐 그런 걸로 구분해야겠네요.


의사 처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키나 체격이 비슷한 데다

헤어스타일까지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한 명 한 명 다른 점을 찾아내서 기억해가야겠지.

그러니까 대체 뭘로요?

눈은 해태가 됐지만 귀는 멀쩡하니까.

큰소리는 쳤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저는 어때요?

지모가 얼굴을 바싹 들이댔다.


그와는 1년 반, 햇수로 3년을 함께 보냈다.


아무리 낯설어도 이 사람이겠구나,

하는 느낌은 있다. 지모는 평범한 기업체

연구소 직원 같은 인상이었다.

실제로 심리학을 전공하고 박사과정을

밟다 뒤늦게 경찰시험을 봤다.


설마 내가 너를 모를 것 같냐.

말을 하고 나자 급격히 의기소침해졌다.

정작 그래야 되는 사람은 3년 차

파트너인 지모나 늘 인상이 구겨져 있는

반장이 아니라 아내여야 하지 않은가.


반장은 못 들을 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이제는 별별 핑계를 다 대면서 빠져나가네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다. 신입 경찰 대부분이

형사계를 못 가겠다고 고개를 흔든다.

호기롭게 발을 들였다 제풀에 나가

떨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나 역시 답답했다.

눈에 보이는 증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엑스레이를 찍어 보일 수도 없었다.

반장이 다른 말은 안 해요?

지모가 빈 종이컵을 손바닥으로 납작하게

누르며 물었다.

이번 사건은 마무리하고 보자는데


본부는 2주 전 발생한 방배동 살인 사건으로

정신이없었다. 사망자는 아파트 관리인에

의해 발견됐다. 마흔여섯, 이름은 박형석

박은 마흔다섯 평 아파트 거실에 대자로

뻗어 있었다. 둔기로 머리를 맞고 즉사했다.


흉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카펫은 원래 색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빨갛게 물이 들었다.

현장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죽고 죽이는 일은 순신간에 일어난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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