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정도 > - by 윤석철


읽어라, 인생이 달라질 것이다.

인간다운 삶은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떻게 완성되는가 윤석철 교수의

철학과 학문세계를 집대성한 역작

삶의 정도




삶의 정도

1부 수단매체의 세계


인간의 능력은 유한하고 불완전하며,

인간 능력의 한계를 확장하기 위한

수단적 도구를 수단매체라고 정의한다.

달리 표현하면, 수단매체란 그것 없이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거나 낮은

생산성을 높여줄 수 있는 도구를 의미한다.


1장의 핵심은 인간의 눈에 보이는 물질적

수단매체뿐 아니라, 지식과 지혜 같은

정신적 지적 수단매체, 그리고 신뢰와

인간적 매력 같은 사회적 수단매체 등도

대등하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있다. 1장에서의 논의는 2장에서

수단매체의 한계가 인간의 한계라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1장 인간의 한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아리랑 고개가 이별의 슬픔을 노래했다면,

보릿고개는 가난의 아픔을 상징했다.

이별 중에는 내일 만남을 기약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하루하루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난은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웠다. 여름 내내 온

가족이 매달려 농사를 짓고 가을에

수확을 거두어봤자, 근근이 겨울을

먹고 나면 봄이 오기도 전에 식량은

동이 났다.


그래서 초여름 보리가 익을 때까지는

끼니를 잇기 어려웠으니, 이 고비를

사람들은 보릿고개라 불렀다.


그렇게 가난하던 시절, 충남 공주군

탄천면 어느 집에 손님이 오셨다.

이 집의 지존이신 할아버지를

찾아온 손님이었다. 저녁식사를

올려야 할 시간이 되자 이 집

며느리는 옆집에 가서 쌀 한 줌을

꿔왔다. 다섯살 난 손자는 밥 익는

냄새에 이끌려 부엌에 들어와서는

밥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꿔온 쌀은 할아버지와 손님

단 두 분만의 분량이었기에, 며느리는

어린 아들에게 손님이 밥을 남기면

그것을 먹게 해주겠다고 달래며

할아버지 방에 상을 올렸다.


가난에서 시작된 나라 사랑


아이는 할아버지 방의 툇마루에 앉아

문틈으로 밥상을 들여다보며 손님이

밥을 남기길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손님이 밥그릇을 모두

비우자 아이는 모두 다 먹어버렸어 하고

엉엉 울면서 툇마루를 내려왔다.

깜짝 놀란 할머니가 황급히 우는 아이를

업고 집 밖으로 나오면서 내일 아침에는

꼭 밥을 먹게 해주겠다며 달랬다.


이튿날 아침, 할머니는 손자를 업고

동네에서 밥을 먹고살 만한 어느

집을 찾아가서는 아무 말 없이 그 집

마당을 쓸어주었다. 눈치를 챈 이 집

안주인은 열 식구 밥에서 조금씩 덜어내어

밥 한 그릇을 만들었다. 십시일반이라는

말이 그대로 실현된 것이다. 할머니는

손자에게 밥을 먹인 뒤, 친구 사이인 이 집

안주인에게 엊저녁 할아버지 방 앞에서

손자가 울게 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때 옆방에서 놀고 있던 이 집의 일곱

살짜리 소년이 두 할머니 사이의 이야기

를 들었다. 그 시절에는 문이 창호지로

되어 있어서 어지간한 소리는 저절로

다 들렸다. 그 후 소년은 자기 집에서도

어머니와 여자 형제들은 웃어른이나

남자들이 남긴 밥으로 끼니를 때운다

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식사

때마다 아버지가 밥을 국에 말아서

반쯤 남겨놓는 이유도 알았다.


그래야 어머니가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난의 아픔을 알게

된 소년의 마음속에는 슬픔의 정서가

깃들어갔다. 이 정서는 소년이 그

나이에 좋아할 만한 모든 놀이를

접어버리고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

리는 습관을 만들어냈다. 어려서

공부를 열심히 하면 커서 가난을

물리칠 능력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상 < 삶의 정도 >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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