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드림> - by 문창기
국내 최다 가맹점 수, 최저 폐점률,
최고 브랜드 파워를 겸비한 이디아
문창기 대표에게 듣는 이디야커피의
성공 비결 꿈꾸는 커피회사
이디야 이야기 커피 드림
이 책을 읽다 보니 이디야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젊은 시절에 우리에게 있는
모든 일들은 경험이 되고
자산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고
자신이 하는 일이 결국에는 더 큰
힘을 가지게 한다는 사실을.
물론 아닌 사람도 존재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똑같을 수는 없으니깐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우리 모두에게도 꿈을
이룰 수 있는 순간이 오지 않겠는가.
포기 하지 말고 항상 내가 하는
일이 나에게 큰 보답을 할 꺼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고싶다.
이제 <커피 드림>의 본문
내용을 살펴 보겠습니다.
프롤로그
꿈을 로스팅하다
로스팅은 커피 생두라는 원석을 커피라는
보석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한 맛이 없는 커피 생두에 열을 가해
볶아야만 비로소 짙은 갈색의 원두가 되어
커피 고유의 향과 맛을 얻게 되는 것이다.
나는 요즘 꿈을 로스팅한다는 문장을
자주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꿈을 가지고
있으며 누구나 꿈을 꿀 자유가 있다.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한다.
하지만 갈수록 열정과 재능, 노력만
으로는 꿈을 이루기 쉽지 않은 세상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내가 되뇌는
꿈을 로스팅한다의 의미는, 생두에
열을 가해 커피를 만들듯이 재능과
열정은 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힌
이들이 다시 꿈을 꿀 수 있도록
이디야가 힘을 보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디야는 작은 일들부터
실천하고 있다. 전 임직원이 함께
봉사단을 꾸려 사랑의 쌀, 연탄 나눔,
사랑의 김장 나눔, 등 자원봉사를 한다.
국내에서뿐 아니라 극심한 식수난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주민들을 위한
우물사업 B-water 캠페인을 후원해
에티오피아에 우물도 만들어주었다.
내부고객 만족 경영이라는 원칙도
확대하여 본사 직원들만이 아니라
가맹점주님 자녀들과 아르바이트생
들에게도 장학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특히 매장 아르바이트생들은 이디야
메이트라 명명하고, 이디야 메이트
희망기금 사업을 통해 장학금 및
자기계발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더불어 본사 신입사원 채용에 지원하면
가산점을 부여해 적극 채용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이디야, 1,000호점 돌파
기념 기자회견을 하며 나는 이디야
드림 로스팅 재단 설립을 발표했다.
그동안 해왔던 다양한 사회봉사활동을
통합해 보다 효율적이고 지속적인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사회
취약 계층 지원, 장학 사업 확대,
결손가정 후견인 사업뿐 아니라
중국의 사막화 방지를 위한 식목
사업을 비롯한 국외 사회공헌 활동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
하고 있는 젊은 예술인 후원 사업
등이 이디야 드림 로스팅 재단을
통해 펼쳐질 것이다.
지난 시간, 익숙하지 않은 길이기에
겁이 났고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자신감이 커지는 만큼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는 게 사실이다.
조금씩 커가는 회사와 함께 내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도 무게를 더해가고,
그 때문에 매일 나를 채찍질하고 도전한다.
1장 이디야가 어디야
이상한 은행원
1998년 IMF라는 거대한 파도가
대한민국을 덮쳤을 때, 내가 몸담고
있던 동화은행도 그 파도에 휩쓸려
사라졌다. 당시의 좌절감, 허탈감,
막막함 등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고, 함께 몰려온
일련의 일들은 따로 책 한 권을 써도
될 만큼 여러모로 내 인생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난 나의 은행원 시절을 우울하게
기억하지 않는다. 오히려 젊음, 패기,
가능성, 성취감 등으로 그 시절 기억한다.
그리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사업의 모든 것을 동화은행에서 배웠다.
52명의 동화은행 창립 멤버 가운데 한 명으로
은행생활을 시작한 나는 점포개발부터
기획조사부, 종합기획부를 거쳐 사보
기자와 경영혁신팀, 지점 근무까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동화은행에 들어가기 전에는, 은행원 하면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자세로 은행 창구에
앉아 고객들이 맡긴 돈을 세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신설 은행이었던 동화
은행에서의 내 업무는 이와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은행 설립 초기에는 점포
개발실에서 일했다.
신설 은행에서
점포 개설은 매우 중요하고 또
어려운 일이다. 우선 발품을 팔아
적당한 장소를 골라야 하고, 부동산
중개업자와 이야기하고, 건물주도
만나야 한다. 그리고 각종 서류들,
법적인 이슈, 자금 문제까지 종합적
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 말인 즉,
나는 출근해서 퇴근 직전까지
외근을 했다는 얘기다.
그렇게 자리를 물색하고 사람들과
만나면서 계약한 점포들이 하나둘
생길 즈음 한 가지 놀란 일이 있다.
내가 아깝게 놓친 몇몇 자리를
은행장님이 이름까지 정확히 알고
계셨다. 실제로 현장을 돌아다닌
나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고경영자가 그렇게 디테일한
부분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에
큰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 후, 기획조사부, 종합기획부를
거치며 예산 운영과 회사 구조적인
업무를 맡아 일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런 다음 또 한 번 은행원 같지 않은
업무를 맡았으니 바로 사보 기자였다.
카메라를 메고 이슈들을 찾아다니고,
지점들을 돌며 취재를 다녔다. 그런데
지금까지 비밀로 간직해온 그 시절의
아찔한 경험이 하나 있다. 세월이 많이
지났으니 이제야 얘기할 수 있는데,
은행장 사모님과 임원 사모님들이
참석하신 적십자 바자회를 취재 갔다가
필름 없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것이다.
궁여지책으로 1년 전 같은 행사 사진으로
대체하고 위기를 넘겼다. 아찔했던 기억
이지만 덕분에 사소한 일도 꼭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후에는 은행장 직속
기관인 경영혁신팀에서 일했다. 비용
절감 프로젝트로 지점장의 운전기사와
카폰을 없애는 혁신안을 진행할 때는
반발이 상당했다. 운전을 할 줄 모른
다는 지점장에게는 운전학원비를
대주겠다고까지 하면서 강행했다.
불필요한 업무 없애기 캠페인 때도
보수적인 은행원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단호한 조치를 취했던 기억이
있다. 지점으로 발려이 난 후에도
나는 전통적인 은행원 스타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숫자 하나하나와
씨름하는 대신 인간관계에 집중했다.
거래처 사람이 상을 당하면 찾아가서
밤을 샜고, 도움을 필요로 하면 인맥을
동원해 최대한 도우려 했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거래처들을 자주 찾아가
농담 한 마디라도 건넸다.
이상 <커피 드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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