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상상력> - by 심용환


한 나라의 역사가 그 나라의 헌법을 만든다


다른 나라의 역사에서, 다른 나라의 헌법에서

아홉 차례나 바뀌어온 우리의 헌법에서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우리의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만들어갈 것인가.



이제 우리 스스로

우리의 헌법 이야기를

만들어야 할 시간이다.


헌법, 권력자의 것인가

국민의 것인가.


시대가 주목한 역사가 심용환

헌법에 담긴 정의와 가치를 말하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서문


개헌, 쓸모 있는 주장인가


87년 개헌 과정에서 장기집권을 제도적으로

막고자 마련된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이제 바꿀 때가 되었습니다.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임기 4년에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게

개정한다면 국정의 책임성과

안정성을 제고하고, 국가적

전략과제에 대한 일관성과

연속성을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2007년 1월 9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입니다.


G20 정상회의만 해도 준비하는 데

1년 이상 걸리는 일인데 대통령이

어떻게 모든 걸 다 할수 있겠느냐.


복지나 행정처럼 국내 문제가 중심인

 부부은 다른 사람이 하고 대통령은

외교 등 국제적인 부분이 중심인

문제를 맡는 게 바람직하다.



2010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를 준비하던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입니다.




2014년 말에 여러 여론조사기관에서

실시한 개헌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도

두 발언과 지근거리에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개헌 찬성 의견이 높으며

선호하는 정부 형태는 대부분

대통령중임제였습니다.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는 결과가 훨씬

압도적이었습니다.


정치권 여러 곳에서 이와 비슷한 수준의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재오 전 의원은 <이제는 개헌이다> 라는

책까지 쓰며 개헌 논의를 주도하고자 하였고

야당에게는 불모의 터였던 대구에서

기어코 승리를 거머쥔 김부겸 의원의 

당선 일성도 개헌이었습니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의

구구절절한 도움 요청으 끝내 외면한

손학규 전 의원도 2016년 5월 게이오대학교

강연에서 개헌 이야기를 꺼내더니, 이제는

제7공화국을 제안하며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헌법을 개정하자는 주장은 너무나 많은 

정치인들이 접었다 펼쳤다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일견 지겹기까지 합니다.


대통령은 개헌보다 민생에 전념해주길 바란다.

지금 헌법 때문에 나라가 잘못됐는가?


노무현 대통령이 원포인트 개헌을 꺼내들었을 때

당시 서울시장 이명박과 경기도지사 손학규의 발언입니다.


지금까지 헌법을 고쳐야 한다는 정치인들의

주장은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른 것이었기

때문에 쉽사리 제기되고 쉽사리 반대에 

부딪치며 금세 사그라졌습니다.


그 결과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의 개정을고

둘러싼 논의는 지지부진했고 국민적 관심사가

되지도 못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2016년이 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헌법 위의 정부, 국민을 위협하다


2015년 말부터 2016년 초까지 정확히

말하면 2016년 4·13 총선에서 야권이

승리를 거두기 전까지 국민들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노동개혁, 

한일 위안부 합의, 미디어법 개정 등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대통령과 행정부의 독주가 수년간 누적되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는 그래도 다를 것이다 라는

박근혜 정권에 대한 기대는 현실에서

묘하게 비틀어졌습니다. 


헌법과 법률이 무시되기 일쑤였고 시행령을

비롯한 온갖 편법적인 수단들이, 보다 정확히

말해서 반 헌법적인 행정집행들이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대통령 주변의 주요 직책은 유신을 경험한

고령의 인사들로 채워졌고 국방부, 검찰 등

과거 엘리트 그룹에 권력이 집중되었다.


친박, 비박, 진박 논쟁이 벌어지면서 

새누리당은 집권여당이라기보다는

대통령의 전위 정당으로 전락했으며 

소위 뉴라이트라고 불리는 학자들이

대거 방송, 문화, 학술 단체의 기관장

자리를 꿰찼습니다.


어버이연합에 이어 엄마부대가 정치의

장에 동원되었고 여당이 일베의 폭식투쟁을

공개적으로 치하하며 피자와 치킨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온갖 말도 안 되는 논리로 한국사 교과서는 

물론 한국의 교육체제 자체가 종북 

좌경화되었다고 주장하던 극우 인사들이

새누리당에 입당한 뒤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장면을 우리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6공화국이 시작된 이래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대통령이

직접 사과를 하고 정부 주요 부처의 인사들이

좌천되며 끓어오른 국민여론에 반응하던 

통상적인 모습이 사라지고, 책임 떠넘기기를

넘어서 뻔뻔함이 당연해져 버렸습니다.


더욱 뻔뻔하게, 더욱 호전적으로, 야당은

무시하면 그만이고 결국 공천만 보장된다면

대통령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분위기

속에서 권력은 대통령에 집중되었고 기가 찬

국민들은 도대체 야당은 뭘 하고 있느냐고

질책했습니다. 그러더니 결국 심각한 

위기감이 감돌기 시작합니다.



대통령이 개헌을 꿈꾼다


2015년 말부터 여기저기에서 두려움이 터져

나왔고 2016년이 시작되면서 팟캐스트 등을

통해 야권의 유력 인사들이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개헌 분위기를 조성한

인문들은 다름 아닌 친박 인사들이었습니다.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이 5년 단임제 

대통령 제도는 이미 죽은 제도가 된 것 아니냐 며

포문을 열고 조원진, 윤상현 의원 등이 

갑론을박을 이어나가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정부와 여당은 2015년 말부터 2016년 초까지 

개헌 논의에 군불을 지폈습니다.


2016년 4·13총선 직전의 분위기를 기억하십니까?


당시 선거는 새누리당의 과반 달성이 거의

확실하며 최소 150석에서 최대 200석까지

가능하다는 분위기였습니다.


되돌아보면 오판도 이런 오판이 없었지만

4·13총선 전야까지 여야를 막론하고

모두가 받아들이던 광범위한 생각이었습니다.


사실 야당 의원의 다수가 개헌에 찬성하며

설령 여당이 150석에 그치더라도 야당에

내각제 개헌을 제안하면 된다, 장관 자리의

절반 정도를 야당 몫으로 보장해주면 30명

이상 개헌에 찬성할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를 제압할 수 있는

인물을 끌어들여서 그에게 대통령 자리를 주고

박근혜를 중임 제한이 없는 총리 자리에 앉히려는

내각제 개헌 계획이었습니다.


러시아의 푸틴이나 일본의 아베가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입니다.


시인 김지하, 소설가 조정래 등의 이름을

들먹이며 박근혜 대통령이 재임해야 한다는

찌라시가 돌기도 했습니다.


이원집정부제든 의원내각제든 4·13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하면 박근혜 장기집권 혹은

박근혜 영구집권이 실현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국민들 사이에 가득했습니다.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선례가 있습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라, 일본의 이야기입니다.


일본은 1920년대의 다이쇼데모크라시라고

불리는 민주주의적 개혁운동이 실패한 뒤

군국주의 국가가 됩니다. 


당시 다이쇼데모크라시에 대항하여 각종

극우단체와 극우 사상가들이 등장합니다.


대일본국수회, 적화방지단, 건국회같이

이름부터 우리나라의 극우단체와 유사한

단체들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결국 민주주의 개혁진영이 패배하면서 정부와

군부 그리고 재벌이 유착하고 도조 히데키에

의한 독재정치가 자행됩니다.


이 시기의 일본을 두고 대부분은 파시즘국가,

전쟁광정도로 해석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한 분석도 아닙니다.


문제의 본질은 건전한 정치체제가 파괴되고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 거대한 덩어리가 

되면서 필연적으로 독재자가 출현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위기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1980년대 이후 일본 정부는 교과서 검인정제도를

도입하여 교과서에 기술된 내용의 조정·왜곡을

시도했지만, 한국 정부의 강력한 항의와 대중국외교

개선 등을 이유로 교과서 개정을 포기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 실패가 일본 우익을

결집시킵니다. 정치인을 비롯하여 재계와

교육계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우익 

네트워크가 구성되었고, 교과서 개정을

넘어서는 보다 강력한 비전을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헌법을 바꾸자.


개헌이 일본 우익의 핵심목표가 된 것입니다.

이후 1990년대 초반 자민당은 심각한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결국 사민당이 먼저 무너지고

다시 민주당마저 실패하면서 일본 우익이

1980년대 초반에 세운 계획이 

현실화되기 시작합니다.


평화헌법이 위협받고 있으며 미국의

비호 아래 일본 보수파가 주도하는 

신냉전시대로 돌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시작된 개헌 논의, 그 목적은?


일본과 우리는 다릅니다.

2016년 4·13총선에서 여당의 궤멸적인

패배 이후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개헌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고민이 됩니다.


결국 몇몇 정치 싸움 이후 헌행 헌법으로

그냥 갈 것이고, 대통령 잘 뽑고 국회의원과 

지자체 선거만 잘하면 별 문제가 없는 것일까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본인들이 원하는 형태로

국가구조를 뜯어고치고 싶어 하는 야욕은

이제 사라진 것일까요?


아니면 헌법을 뜯어고칠 만큼의 강력한 국민적

요구가 있고 그것을 수용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헌법을

바라보며 새로운 사회상을 꿈꾸어야 

하는 것일까요?


사실 개헌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은

매우 단순합니다. 미국처럼 4년 증임제로

가야 책임정치도 가능해지고 정책의 연속성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앵무새처럼 반복

되니까 말입니다.


몇 가지 수사도 더해지긴 합니다.


현행 헌법은 1987년 6월항쟁의 결과물인데

1987년 이후 사회가 너무나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개헌은 불가피하다는 겁니다.


또한 엄밀히 따져서 현행 헌법은 전두환 

정권과 타협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제왕적 대통령제의 성격이 너무

강하다는 겁니다.


승자독식 구조로 인해 정쟁이 극심해지고

국론 분열로 인한 천문학적인 사회 갈등

비용마저 발생한다고 합니다.


심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약 300조 원이

낭비되고 있다고까지 합니다. 더구나

외교정책이나 국방정책 같은 국가운영의

핵심적인 주제까지도 정쟁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권력을 분립해야만 이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다는 주장까지 있습니다.


결국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제에서 

4년 중임제로 바꾸고, 그 권력을 조정하거나

분립해야 한다는 겁니다.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에 대한 논의도

있지만 개헌과 관련된 내용은 결국 대통령제를

어떻게 조정할 것이냐에 집중되어 있고

어떤 식으로든 조정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국민여론이 전반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셈입니다.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5년 단임제에서 4년 중임제로 바뀐다고

정책의 연속성이 보장될까요.


오히려 선거 시기가 앞당겨지고 

이를 둘러싼 정치적 이합집산의 

경향이 강회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대통령, 국회의원, 지자체 선거를

통합해버리면 선거비용은 절약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책적 연속성이

단절될 가능성 또한 높아집니다.


그때그때의 사회적 이슈와 정치 공세가

표심에 영향을 줄 것이며 정쟁에 영향을

받은 표심이 4년에 한 번씩 모든 정치구조를

일괄적으로 결정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특정 정당이나 정치가가 권력을 

독점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1955년 김영삼 정부 이후 전면적

지방자치제가 실시 되었고 국민들은 훨씬

풍요로운 정치적 선택의 기회를 누리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지방선거에서

심각한 패배를 경험하면서 민심의 견제를 받았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을 주제로 모험적인

정치 수를 던지면서 안철수와 박원순이라는 거물

정치인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패배한 홍준표, 안상수는

경상도 지자체 선거에서 당선되면서 재기했고

안희정, 이재명 등은 지방자치단체장직을 통해

잠룡 그룹에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2016년 4·13총선 결과 역시 대통령의 독주와

차기 대선의 판도를 바꿀 정도의 위세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지방자치제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현재의 정치 현상이 모두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현재의 제도가 갖고있는 나름의

안정성과 효율성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고

단지 제도를 바꾸면 무조건 좋아진다는 식의

생각은 지양해야 합니다.


5년 단임제에 폐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효과 또한 있습니다. 단임제를 의식한 대통령은

집권 초반 강력한 리더십을 통해 정책적 승리를

이루어내고자 합니다.


김대중 정부 당시 벤처기업 지원 사업을 통한

외환위기 극복이라든지, 햇볕정책을 통한 남북

관계 개선 등은 현행 대통령제가 보여준 리더십의

전형이었습니다. 좋든 싫든 4대강 사업을 통해

온 산하를 뜯어고친 이명박 정부의 추진력 또한

대통령제였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심지어 하나회 척결이나 금융실명제 같은 김영삼

정부 당시 주요 개혁도 대통령제가 지닌 

강점이 없었다면 추진할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장기집권을 원천 봉쇄한다는 측면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1987년 이후 약 30년이 흐르는 동안 

대한민국은 부족하나마 대한민국만의

고유한 민주주의문화를 축적했습니다.


결국 이는 5년 단임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치문화이기도 합니다.


그에 비해 밀물처럼 지속적으로 밀려드는 

개헌 논의는 단순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간 축적되어온 정치문화에 대한 고려

5년 단임제 대통령제가 보여준 쓸모 있는

모습들,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나 지자체 

선거와의 관계 등 많은 것들이 고민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4년 증임제만을 외칠 뿐입니다.


주장은 너무나 막연하고 사회적 동의

역시 모호할 뿐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