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by 사노 요코


365일 책을 소개하는

Stories Book입니다.


오늘 소개 드릴 책은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라는

에세이 도서입니다.


기대고 싶은 왕언니의

듣다 보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유쾌한 수다 에세이



자신의 특이함과 까칠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그림책 작가이자 수필가인

사노 요코가 보여 주는

먹고, 자고, 즐기며 나이 드는법


지인들의 별장을 옮겨 다니며

얹혀삶을 실천하는 뻔뻔 지수

100 그녀, TV나 영화를 보면서

이상형을 수시로 바꾸며 미남을 

걷어차고 차도남에게 매달리는

상상을 즐기는 공상왕 그녀


늙으면 SF소설을 쓰고 싶지만

과학적 지식이 필요해서 어려우면 

살인물이라도 써서 죽이고 싶은

사람을 차례차례 등장시켜 닥치는 대로

산산조각 내 주겠다는 뒤끝

작렬 그녀


그런 그녀의, 굳이 힘내라고 

말하지 않아도 듣고 있으면

힘이 나는 이야기들


소녀소설은 인류에게 무엇을 했나


내가 초등학교 때, 소녀소설이라는

저속한 소설책이 있었다.


소녀소설은 계모가 나오고

갸륵하고 불행하고 아름다고 똑똑한

여자아이가 운명에 농락당하며 각양각색의

박해를 견뎌 내다가 드디어 행복해지는

스토리로 짜여 있다.


소녀소설 속에 연애는 없었다.

단지 아름다운 여자 음악 선생님이

소녀들의 흠모의 대상이 되고

누군가는 폐병을 앓고 있으며

부자 여자아이는 심술을 부리고

그 여자아이의 가난한 친엄마도 등장한다.


나는 소녀소설을 읽으며 주인공의

운명을 함께 겪고 싶어 어머니에게

사 달랐고 졸랐다.


하지만 그런것도 책이라고 읽니

하는 질책만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여름날 저녁에

나막신을 신고 책방으로 나갔다.




한쪽 다리로 서서 다른 한쪽 다리를

그 다리에 기억자로 구부려 붙이고

있다가, 지치면 다리를 교대하면서

책을 읽었다.


그러다가 책방 아저씨가 나를 주시한다

싶으면 다른 책방으로 옮겨 갔다.


초저녁 어스름 속에서 책방은

몹시 밝았는데, 그게 주인공 소녀의

불행과 대비되어 오히려 

서글프게 느껴졌다.


어머니가 말한 대로 소년 소녀의

불행은 시시껄렁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뭐 하나 기억에 남은 게 없으니까.


소녀소설이 내게 제공한 것은 쾌락이었다.

가난한 운명은 쾌락이었다.

그것은 남의 불행은 쾌락이라는 

여성 본성의 근원을 건드렸다.


그러나 소녀소설은 한편으론 나에게

열등감을 심어 줬다.


공터 안 나무에서 남자아이를

밀어 떨어뜨리고 팬티를 치마 밑으로

비어져 나오게 입고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고 다니는 여자아이는

소녀소설에는 조연으로도 안 나왔다.


소녀소설에서는 악역조차 

부자에다가 미인이었다.


어머니가 나에게 고함치거나

손을 들어 올리거나 하면 나는

즉각 소녀소설 속 각박한 운명을

견뎌 내는 주인공으로 변했는데

그것도 생각해 보면 쾌락의 하나였다.


밖에서는 남자아이를 울리고 놀다가

집에 와서는 비련의 소녀소설 주인공이

되자니 나도 바빳다.


하지만 걱정도 되었다.


소녀소설의 주인공은 아름답고 

다정하고 우아했는데, 그 점은

몇 십 권을 읽어도 예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하라고,

나는 어떻게 살아가라고.


또한 소녀소설에는 연애는 없었지만,

읽다 보면 어쩐지 에로틱하고 감미로운

예감이 느껴졌다.


그 주인공 같은 여자아이만이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거라는

예감 말이다.


그건 예감으로 끝나지 않았다.


우리 반에는 소녀소설의 주인공이

될 법한 여자애가 한두 명은 꼭 

있었는데, 남자아이들은 그녀들의

검은 머리카락을 잡아당겨서 

울리곤 했다.


아름다운 여자아이는 하얀 얼굴과

풍부한 머리카락을 푹 숙이고

훌쩍훌쩍 울었다.


그 우는 모습이 소녀소설의 

삽화 같아서 에로틱했다.


나는 남자아이에게 왕복으로 뺨을

맞아도 울기는커녕 눈을 부릅뜨고

남자아이를 노려봤다.


나는 그때 아름다운 소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것과

왕복으로 내 뺨을 때리는 것은

괴롭힘이라는 점에서는 같을지

몰라도 완전히 다른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것은

사랑의 행위지만, 나를 때리는 것은

사랑의 행위가 아니다.


그러나 괴롭히는 방법을 이렇게

또는 저렇게 해달라고 내 쪽에서

주문할 수는 없다.


나는 드디어 소녀소설을 졸업했지만,

소녀소설 안의 소녀는 어른으로 

성장하여 다시 등장했다.


어른이 된 그녀들은 압도적으로

아름다고 순종적이었다.


그것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았고

소설과 영화가 다르지 않았다.

나 역시 뚱뚱하거나 못생긴 

여자의 이야기는 불쾌했으며,

영화에 아름다운 여자가 

나오지 않으면 실망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연애는 당연히 아름답고 다정한

여자만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학 2학년 때, 키가 크고 멋있는

남자아이와 다마가와 강변에서

데이트를 했다.


갈대인지 참억새인지 저녁 해를

받아 빛났다.


태양이 이제 막 가라앉으려

했고 내 옆에는 잘생긴 청년이 있었다.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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