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적의 길 > - by 이정동

축적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1. 시행착오 경험을 담는 궁극의 그릇, 고수를 키워라

2. 아이디어는 흔하다. 스케일업 역량을 키워라

3. 시행착오를 뒷받침할 제조 현장을 키워라

4. 고독한 천재는 없다, 사회적 축적을 꾀하라

5. 중국의 경쟁력 비밀을 이해하고 이용하라


축적의 길


축적지향의 조직·사회를 만드는 4개의 열쇠


1. 고수의 시대

2. 스몰베팅 스케일업 전략

3. 위험공유사회

4. 축적이향의 리더십


PART 1 대전환 : 착각에서 축적으로


중간소득함정을 돌파한 대한민국

성장은 멈춘다: 중간소등함정의 덫


최근 경제성장을 연구하는 분야에서 세계적

으로 유행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중간소득

함정이다.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IMF,

OECD 등 거의 모든 국제기구들에서 이에

대한 보고서를 냈을 정도다.




핵심정인 내용은,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한 국가의 경제가 가난한 상태를 벗어나 성공

적으로 경제개발을 시작하더라도 중간소득

수준에 이르면 이상하게도 성장이 서서히

멈추는 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중간소득 수준이 얼마인가는 연구자마다 다르

지만, 대체로 일인당 국민소득 기준으로 7,500

달러에서 15,000달러 사이 정도로 이야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2년 발간된 세계은행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60년대 시점에서 중간

소득 수준에 들어간 101개 국가 가운데 대부

분의 국가가 2008년의 시점, 즉 48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중간소득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비유하자면 마치 인공위성을 싣고 로켓이 지상

에서 출발하여 기분 좋게 상승하다가 어느 정도

높이가 되면, 이상하게 힘이 빠지면서 고도 상승

속도가 점차 느려지거나 그 수준에 머무는 것과

같다. 왜 성장이 멈출까? 가장 널리 언급되는 원

인은 경제가 발전하면서 소위 후발자의 이득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논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경제개발을 처음 시작한 후발국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이점이 있다. 우선 농업 등 생산성이

낮은 전통적인 분야에 생산가능인력이 많이

몰려 있는데, 공장이 들어서고 제조업 기반이

마련되기 시작하면 이들이 노동시장에 낮은

임금으로 대량 공급된다.


미취업 상태인 여성인력이 산업인력으로 대규모

공급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선진국에서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만들

어진 검증 된 기술을 중고장비의 형태로 싼값에

도입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또한 비용경쟁력이

있는 산업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이처럼 인력이나 자본, 기술의 측면에서 경제개발

초기에 누리게 되는 이점을 후발자의 이득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쓰이지 않던 자원을 활용하게 되고,

선진국의 기술에 무임승차하면서 얻는 공짜 혜택

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비용경쟁력이 있는 상

품을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런 후발자의 공짜 이득을 무한정 누릴

수는 없다. 농촌의 유휴인력을 활요하는 것이 한

계에 이르면 임금이 오르기 시작한다. 선진국도

무작정 기술을 내어놓지 않게 되면서 기술적으로

한계에 직면한다. 게다가 결정적으로는, 더 최근에

출발한 후발 개발도상국이 비슷한 방식이지만 더

값싼 노동력과 더 최신의 장비로 무장하고서 강력

한 경쟁자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수출시장에서의 상대적인 경쟁력이 점차 약화되고,

그 결과 경제성장률도 서서히 낮아진다. 그렇게

해서 중간소득 수준에서 로켓의 고도 상승이 서서히

멈추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전통적인 개발경제학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중간소득 함정이야기다.


때의 이웃을 뒤로 하고 중간소득함정을

돌파한 모범국가 한국. 그런데 곳곳에서

경고등이 켜지고, 사이렌이 울린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최근에 중간소득함정이라는 개념이 국제적으로

관심을 받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중국 때문이다.

중국은 80년대 개혁개방 이후 연평균 성장률

10% 수준에서 줄기차게 성장을 거듭하여 2015년

일인당 국민소득 10,057달러의 중간소득국가 수준

에 이르게 되었다. 지금 중국 정부의 최대 관심은

중국경제가 다른 대부분의 나라들처럼 중간소득함정

에 빠지게 될지, 혹은 빠진다고 하더라도 빨리 빠져

나갈 수 있을지 그 방법을 미리 찾는데 있다.


그럼, 한국경제는 어떨까?


진정한 예외, 한국


중간소득함정을 돌파한 예외적인 국가, 즉

1960년에 중간소득 수준에 있었으나 48년

후에 고소득 국가로 올라선 성공적인 국가

들이 한국을 포함해 13개인 것으로 제시

되어 있다.


이들 나라의 이름은 모리셔스, 적도기니, 홍콩,

싱카포르, 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푸에르토리코, 대만, 이스라엘, 일본, 한국이다.

그런데 이들 국가의 리스트를 가만히 살펴보며,

이들이 중간소득함정을 빠져나온 모범적인 국

가라는 의미에 걸맞은지 의문이 든다.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중간소득함점에 빠져 있는

어떤 국가 입장에서, 특히 인구가 1천 만명 이상이

되는 규모의 국가 입장에서 볼 때 벤치마킹하기에

적절한가를 기준으로 이들 13개 국가의 면면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모리셔스는 아프리카 동부 인도양의 남서쪽에

있는 섬 나라로 주요 조세피난처 중의 하나이며,

관광산업이 주 소득원이다. 적도기니는 서울시의

송파구 인구보다 조금 많은 80만명 규모의 인구를

가진 아프리카의 작은 국가인데, 1996년 거대한

유전이 발견되면서 갑자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3위의 산유국이 되어서 잘 살게 된 경우다.


당연히 이 두 국가는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홍콩이나 싱가포르는 어떨까?

물리적으로 작은 도시국가들이고, 제조업이

있다고는 하지만, 항구도시로서의 특성상 중

계무역과 물류가 강하다. 역시 벤치마킹 대상

이라 하기에는 적용할 만한 교훈이 크지 않다.


13개 예외 국가 가운데는 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의 유럽 4개 국가가 포함되어

있다. 이 4개국은 일단 유럽연합으로 묶인

거대 경제권역에 속해 있고, 거기에서 대체

로 관광이나 서비스업 영역을 담당하고 있다.


한마디로 유럽 전체가 쌓은 경쟁력에 숟가락을

얹어서 고소득 국가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불행하게도 이들 네 국가의 머리글자를 따서

PIGS, 즉 유럽의 돼지들이라고 조롱 섞인 표

현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하나같이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재정적자가 심화

되면서 유럽의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다.

역시 벤치마킹 국가라고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푸에르토리코는? 이 나라는 아예 이름이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일 정도로 미국경제와 묶여 있어

경제적인 독립국가로서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기에 적절하지 않다. 이스라엘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사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

48년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고, 기존에 성공적

으로 자리를 잡은 국제적인 유대인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면서 단시간 내에 고소득 국가가

되었기 때문에 일반화하기 어려운 특수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다른 나라가 배워서 써먹을 수

있는 복제 가능한 교훈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이들 10개 나라를 제외하면 한국, 일본 대만이

남는다. 일본에 대해서 산업기술의 관점으로만

한정해서 보면,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이미 기술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다가, 2차 세계대전으로

패망한 이후에 다시 고소득 국가의 지위에 오른

역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경제발전을 시작

하여 고소득 국가에 이른 나라로서는 적절한 사

례라 할 수 없다. 대만은 어떨까? 대만은 분명

좋은 벤치마킹 사례인데 다만, 화교망과 중국

본토 경제권의 힘을 연계하여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에도 적용할 수 있는 전략적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런 저런 이유를 따져보면, 중간소득함정을

돌파한 예외적인 국가로 세계은행이 손꼽은

13개 국가 중에서, 정말 아무것도 없던 상태

에서 출발해 스스로의 힘으로 당당하게 고소

득 국가의 수준에 올라선 한국이야말로 진정한

벤치마킹 대상 국가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중간소득함정에 고나한 많은 보고서

들의 결론은 예외 없이 한국을 좋은 학습 대

상으로 꼽는다. 한국이 어떻게 중간소득함정

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안

다면,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훌륭한 교훈을 얻

을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런 보고서들을 보다 보면 한국의 밖에서는

한국산업의 발전을 경이로운 것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놀라움과 부러움을 넘어

그 비밀을 알고 싶다는 이야기도 꼭 빠지지

않고 따라온다. 한국산업은 제3자의 객관적

분석으로도 확인되는 놀라운 성취를 이뤘으며,

우리 스스로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한 발전을

이뤄냈다.


한때 이웃, 지금은 다른 리그


1960년대 우리나라와 비슷했거나 몇 배나 더

잘 살았던 몇 개 국가들과, 그 이후 일인당 국

민소득의 성장 추세를 비교해 보면, 한국 산업의

성장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와 같은

중남미 국가들,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말레

이시아, 인도 같은 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한국의

성장 추세를 비교해보자.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한때 유럽 수준의 고소득

선진국으로 성장할 것이란 기대를 한 몸에 받았

으며,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은 60년대에 행정고시에

합격한 한국의 신임 고위공무원들이 해외연수를

받으러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당시 우리가

벤치마킹하던 나라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이들은 여전히 중진국 혹은 저개발국과 중진국

사이의 회색지대에 붙잡혀 있다. 세계은행의

일인당 국민소득 통계에 의하면 아르헨티나는

1960년 당시 한국보다 3.4배 잘 사는 국가였으나

2014년 말 기준으로 보면 거꾸로 한국이 3.2배

더 잘 산다. 필리핀은 우리와 비슷했지만, 지금은

한국이 14.8배 더 소득이 높다.


한때 아시아의 4마리 용 가운데 하나로 칭송받던

말레이시아에 비해서도 지금은 한국이 3.3배 더

잘 산다. 모두 한때 이웃이었으나 이제는 속해

있는 리그가 다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 출

발한 85개 신생독립군 가운데 한국과 같은 놀라운

성장을 기록한 국가는 단연코 찾아볼 수 없다.


한국산업의 발전은 무엇보다 천연자원과 같은

자연적 혜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이룩한 것

이기에 더욱 빛난다. 뿐만 아니라 서구의 국가

들과 달리 역사적으로 근대 과학혁명이나 산업

혁명의 혜택을 전혀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지식을 흡수하면서 이룩한 성과이기 때

문에 더 독특하다. 식민지와 전쟁의 참화를 겪으

면서 모든 산업기반이 완전히 파괴되어 글자

그대로 부스러진 흙덩어리만 손에 쥐고 시작

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산업발전의 결과를 놓고 보면, 농업기반이었던

상태에서 경공업, 중화학 공업, 그리고 첨단 하

이테크 산업에 이르기까지 빠른 속도로 산업

포트폴리오를 바꾸어 왔는데, 이 또한 다른

나라가 신기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한국은 경제가 발전하면서 영아사망률이나

평균기대수명과 같은 사회개발 지표도 크게

향상되었다. 세계은행의 자료에 의하면 1960

년의 신생아 일천명아 영아사망률은 80.2명이

었지만, 2015년에는 2.9명으로 급격히 줄었다.


평균기대수명 역시 1960년의 약 53세에서

2014년 약 82세로 크게 늘었다. 어떤 면에

서 보더라도 한국의 눈부신 성장은 명백한

사실이고, 충분히 자랑스러운 것이다.


요약하면, 한국의 산업과 기술은 지난 60년간

놀랍게 성장했다. 국제적으로 보더라도 중간

소득함점을 돌파한 모범적인 국가로 손꼽힌

다. 비슷한 수준에서 경제발전을 시작한 이웃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상대적인 성취가 더 두

드러지게 나타난다.


아무것도 없는 빈손으로 시작하여 산업을

고도화하고, 기초적인 사회개발 지표를 크

게 향상시켜 왔다. 그러나 지금 한국경제가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꺼질 줄 모르고

벌겋게 달아오르던 성장의 엔진이 갑작스

럽게 식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곳저곳에서

경고등이 켜지고 사이렌이 울린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이상 < 축적의 길 >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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