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 by 김신회


<서른은 예쁘다>의 저자 김신회가 발견한

보노보노 속 주옥같은 위로의 문장들

서툰 어른들을 위한 에세이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틀린 길로 가도 괜찮아

다른 걸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보노보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하지만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다. 나처럼, 언젠가

우리가 마주치게 된다면 서로를

알아볼 것이다. 서로에 대해 실컷

투덜대다가 좋아하게 될 것이다.

보노보노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이상한 사람은 있어도 나쁜 사람은 없으니까.



우리는 모두 보노보노 같은 사람들


몇 해 전 한창 트위터에 빠져 있을 때,

희한한 봇 하나를 발견했다.


- 봄의 가장 좋은 점은 봄이 온다는 거다.

어떤 이유든 사라져가는 거야.

이유가 사라졌다면 당신은 이제

언제든 돌아올 수 있어.

자, 이 숲으로 돌아와


야옹이 형에게는 취미가 있다.

취미는 가만히 생각하면 이상한 거다.

어쩌면 취미가 없는 사람이 진짜 어른인지도.





때로는 소심한 아이처럼, 때로는 아무 생각 없는

사람처럼 휙 던지는 이야기들. 하지만 가만히

여러 번 곱씹다보면 살만큼 살아본 팔십대

노인의 혼잣말 같기도 했다. 다 만화

<보노보노>에 나오는 대사들이라고 했다.


몇 개의 글을 더 읽어본 후 그 봇을

팔로우했다. 나와 보노보노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트위터에 이어 만화책을

읽게 되었고 애니메이션도 챙겨보게 됐다.

처음에는 느릿느릿, 어쩔 때는 지루하게까지

느껴지는 전개에 대체 뭔 만화가 이런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도 있었지만 그러는

사이에 보노보노에 대해 알아갔다.


보노보노는 소심하다. 보노보노는 걱정이 많다.

보노보노는 친구들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보노보노는 잘할 줄 아는 게 얼마 없다?

어? 이거 내 얘기인 것 같은데. 줄곧

단점이라 여겨온 내 모습인 것 같은데?

하지만 보노보노는 소심하기 때문에

소심한 마음을 이해할 줄 안다.

걱정이 많은 만큼 정도 많다.


친구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어서 그 어떤

괴팍한 짓을 하는 친구여도 그러려니

이해한다. 잘할 줄 아는 게 워낙 없어서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는 무식하고

우직하게 노력한다.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이 포기하거나 잊어버린다.


처음에는 답답하게 느껴졌던 보노보노의

모습이 마음으로 다가오면서 보노보노와

비슷한 나에게도 장점이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참 별로인 인간인 줄

알았는데 나한테도 봐줄 만한 구석이 있는

건가? 진짜 그런 건가? 그러는 사이

보노보노에게 빠져버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랑 비슷한 사람이 몇 명

더 있었다. 보노보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하지만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처럼.


대단한 꿈 없이도 묵묵히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 큰 재미보다는 편안함을 선호하는

사람들. 어렸을 적 기대에는 못 미치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좌절하기만

하지는 않는 사람들. 잘하고 싶었던 것들

앞에서 한창 욕심을 내고도,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며 체념할 줄 아는 사람들.


나의 웃음과 눈물과 한숨만큼 누군가의

웃음과 눈물과 한숨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들. 가끔은 심하게 의욕 없고

게을러 보이는 사람들. 우리는 다 그런

사람들 아닌가. 잘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럭저럭 살아가는 사람들 아닌가.


보노보노를 알고 나서 세상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됐다. 늘 뾰족하고 날 서 있던 마음

한구석에 보송한 잔디가 돋아난 기분이다.

사람들 다 다르고 가끔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사람도 만나지만 다들 각자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는 것. 내가 이렇게 사는 데

이유가 있듯이 누군가가 그렇게 사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억지로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해하든 하지 않든, 앞으로도 우리는 각자가

선택한 최선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므로,

보노보노와 친구들이 그러는 것처럼.

우리 주변에도 보노보노와 친구들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딘가에는 포로리처럼,

겉으로는 평범하지만 마음속에 빛나는 돌멩이

하나씩 품고 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또 어딘가에는 너부리처럼, 진심을 못된

말과 못난 행동으로밖에 표현할 줄 몰라

도 우정과 사랑 앞에서만큼은 진지해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곳에는

보노보노처럼, 끊임없는 고민과 걱정으로

하루를 채우면서도 나를 아끼는 방법 하나

쯤은 갖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언젠가 우리가 마주치게 된다면 서로를

알아볼 것이다. 서로에 대해 실컷 투덜

대다가 결국엔 좋아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보노보노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이상한 사람은 있어도 나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나처럼, 당신처럼, 그리고

보노보노처럼, 우리는 이상할지는

몰라도 나쁜 사람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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