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믿는 용기> - by 강민정


어차피 정해진 길은 없다.

후회가 덜 남는 선택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 길은 엄마가 아이를 믿는 용기를 낼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더 이상 대한민국의 입시제도의

프레임에 얽매이지 마라


학교가 아이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


본문


헬조선에서 흙수저 부모로 산다는 것


-엄마, 나 꼭 대학에 가야 해?

이와 같은 아이의 질문에 나는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


-당연하지 엄마 때에는 대학만 나와도 먹고사는 건 문제없었어.


실제로 사오십 대의 부모 세대들은 대학만 나오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었다.

아니, 심지어 고졸이라는 최종 학력만으로도

부모, 자식, 며느리와 같은 일인 다역의 삶을

훌륭히 성취하고 사는 이웃들도 많다.


지금이나 그때나 취업난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당시 일명 대학물을 먹은

부모 세대들은 대부분 취업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또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나의 지인 중

몇몇은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개천에서 난 용이

되어 일명 금수저 부모가 되어 있기도 하다.


그들은 현재 대학 교수나 고위직 공무원 혹은

대기업 임원으로 살고 있으며 예비고사, 본고사

세대로서 대학 입학에 고등학교 내신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지금 아이들처럼 학창시절 내내 성실히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명문대를 노릴 수 있는 발칙한

선택이 가능했던 것이다.


또 요즘처럼 과목이 많지도 않았고, 초등학교 때부터

준비할 비교과도 없었다.


나는 체력장 20점과 시험점수 320점을 합해 대학에

가던 학력고사 세대다. 본고사 형태의 서술형도 없었다.


오로지 320점을 향해 온갖 종류의 찍신을 모셔 와서

객관식 문항을 잘 찍으면 그만이었다.

또한 학력고사에서 한두 문제를 더 맞히면 내신 등급

하나쯤은 가뿐히 커버할 수 있었기에 고등학교 내내

딴 짓을 하다가도 3학년 때 바짝 정신을 차리면

명문대 입학도 가능했다.


<수학의 정석>과 <성문 종합영어>를 한 장식

뜯어 외운 뒤 실제로 먹어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의식을 감행했던 세대다.


이들 역시 높게 솟은 명문대의 철문을

거침없이 열고 합격하기도 했다.


그 후 단순 지식을 평가하는 학력고사와 다르게 응용력,

추론력 등을 평가하는 수능 체제로 변했다.

선택지도 4지 선다형에서 5시 선다형으로 바뀌었다.


종합해보면, 초기의 수능 입시는 수능과 내신으로 학생을

선발한 후 대학별 논술과 구술면접을 통해 최종 합격생을

거르는 제도였다. 이런 입시제도의 영향으로 특목고는

입시 거품의 핵심으로 부상하게 되었고, 그에 따른 과도한

교육비의 투자는 끊이지 않는 사교육 전쟁을 초래했다.


온갖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수능 입시체제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60만 수험생과 그 학부모 위에 

군림하며 발전하고 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전공의 특성과 잠재력을 겸비한 학생을

발굴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선진국형 입시제도

학생부 종합전형이다.


대학이 각 모집 전형의 특색에 맞는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의지 아래 학생의 학업 능력, 학업 환경, 잠재력, 발전 가능성,

전공 적합성, 교과 활동, 비교과 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겠다는 취지인 것이다.


현재의 변화된 대학 입시의 중심에 서 있는 아이들은

부모 세대처럼 딴짓을 하다가도 고등학교 3학년 때

1년을 바짝 정신 차려 공부 한다고 해서 결코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다.


명문대는커녕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조차

꿈꾸기 힘든 현실이다.


이런 대한민국의 입시 판을 풍자하며 생겨난

온갖 신조어는 아이들의 입시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말해준다.


얼마 전 <워싱턴 포스트>에 한국 젊은이들에게 한국은

생지옥이란 제목으로 지금 우리 아이들의 지옥 같은

입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젊은이들에게 한국에서 사는 것은 지옥에서 사는것과

마찬가지이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근사한 직업을 보장받는 대신, 흙수저로 태어난

사람들은 장시간 노동에 저임금을 받고 최소한의 혜택도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간다.


또한 한국 청년들은 자신의 나라를 지옥이라 부르며

탈출구를 찾는다.


헬조선은 유교적 계급 질서가 사회를 단단히 틀어쥐고

누가 앞서갈지를 봉건제도로 결정하는

조선왕조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헬조선 현상의 주된 배경으로

경제적 요인을 꼽으며 지금의 부모 세대인 40~50대들은

1960~1970년대의 경제 발전, 1980년대의 민주화 등

사회가 발전하는 긍정적인 과정 속에 살았지만,

이후에 태어난 자녀 세대인 20~30대는 부모 세대와는

대조적으로 부정적인 면들만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는 10대 자녀 둘을 키우고 있는 

대표적인 40대 흙수저 부모다.

<워싱턴 포스트>가, 한국이 지옥으로 불리는

원인을 경제적인 요인 이라고 지적한 것에

나 역시 동감한다.


나는 그 경제적 요인 중에서도 자녀 교육비가

제일 큰 주범이라고 생각한다.


동양 문화권의 한국 가정에서 기꺼이 짊어지고

가는 자녀 교육비의 무게를 서양의 관점에서는

절대 동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가 어떻게 동감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교육비의 무게는 사교육비를 의미한다.

보통 사교육비라하면 일반 국공립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학원과 과외 비용을 떠올린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사립

··고뿐만 아니라 사립대학교의 등록금까지

사교육비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명문대를 위한 사교육비 지출이 가정 경제를

위협할 만한 수준을 넘어선 지는 이미 오래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아이들을 교육의 벼랑으로 내몰고

가정 경제의 붕괴를 가져오는 주범인 사교육비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다수의 학생과 학부모가 이를 무능력한 정부와

교육부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박수도 양손이 부딪혀야 소리가 나는 법

교육부와 손뼉을 마주치며 박수를 치고 있는

반대쪽 손은 혹시 학부모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50대에 진입한 남편과 

대학생 아들과 함께 한집 살고 있다.


남편은 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경제활동을

어찌어찌 유지할 것 같다고 말하지만 사실 요즘

회사의 분위기로 봐서는 그나마도 하루하루가

위태롭기 짝이 없다.


노후의 삶은 아직 준비해놓은게 없어서

막연히 두렵기만 하다. 이런 와중에 연일 신문과

뉴스에서는 몇 년 후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이들의 보도가 끊이질 않는다.


우리 부부의 노후는 물론, 아직 살아계셔서 감사한

우리 부모님의 부양에 대한 책임을 포함해

새끼들의 교육비에, 학자금에, 아직 30년이나

남은 주택융자금까지 실로 숨통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금수저니, 은수저니, 부모가 제일 큰 스펙이니

하는 말들을 들을 때마다 그나마 헐떡거리는

숨통이 막히다 못해 끊어질 것 같다.


이러다가는 정말 꽃 한번 제대로 펴보지도

못한 채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쯤에서 나는 숨 한 번 길게 내쉬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정신을 차려본다.


과연 대한민국에 금수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내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TV와 드라마 속의 금수저만 보일 뿐인다.

여기서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나는 아이들에게 물려줄 금수저나 은수저가 없다.

주변에서 흙수저라 말하는 아이들이 불만과 불평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자주 본다.


불평등하지만 어쨌거나 지옥이라 불리는 한국이

내 아이의 국적이다. 그리고 불만과 불평의 감정놀음에

휘둘릴 시간에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 아이가

빛날 수 있는 재능을 찾아 선택하고 집중하게

도와주면 되지 않을까?라고 말이다.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우리 집도 그렇고

이웃을 둘러봐도 그렇고 대부분이 흙수저 태생인

이웃들과 아직까지는 잘 살고 있다.


정말 시간을 투자해서 고민해야 할 문제는 뉴스와 신문에

나오는 헬조선이 아니라 나와 내 아이들이

맞닥뜨리게 될, 상상조차 불가능해 보이는

다가올 미래에의 준비이며 살아낼 궁리다.


지금은 응답하라 1988이 아니다.


그 시절에는 대학 졸업장만으로도 많은 것을

보증 받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명심하자!


지금 우리 아이들은 헬조선의 한복판에 살고 있다.


더 이상 대학 졸업장이 아이의 인생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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