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페미니스트> - by 록산 게이
365일 책을 소개하는
Stories Book입니다.
오늘 소개 드릴 책은
<나쁜 페미니스트> 라는
사회/정치 도서입니다.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우리 시대 페미니즘의 새로운 고전
페미니즘은 왜 불편하고 두려운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면서 왜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걸까?
핑크색을 좋아하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는 걸까?
서문
세상은 우리가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빠르고 복잡하게 변하고 있다.
이런 종잡을 수 없는 변화 앞에서
우리는 어리둥절해져 넋 놓고
있게 되길 있쑤다.
그러는 사이 문화적 풍조가 여성들에게
불리하게 바뀔 기미가 감지된다.
정치권은 어떻게든 여성의 생식의 자유를
축소하려고 하고 뿌리 깊은 강간 문화는
사라질 줄 모르고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음악, 영화, 문학에서 여성은 수시로
비하와 멸시를 당한다.
어떤 코미디언은 여자들이 앉자 있을 때
뒤에서 몰래 다가가 아랫배를 살짝
만지라고 말한다. 여성의 기분 따위
가볍게 무시하고 멋대로 선을 넘는
것이 엄청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모든 장르의 팝음악에는 여성 비하적인
가사가 등장하는데 제길, 하필 그런
노래가 너무나 중독성 있어서 나도 모르게
내 존재를 깎아 내리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로빈 시크 같은 가수는 우리가 원한다는
식으로 멋대로 생각해 버린다.
래퍼 제이지의 랩에는 비치가 무슨
쉼표나 마침표보다도 더 자주 나온다.
극장에 가도 남자들 이야기만 중요한 것
마냥 온통 사나이들 이야기뿐이다.
여배우들은 옆에 대기하고 있다가
남자의 조력자가 되거나 애인이
되어 자기 역할을 다하면 조용히 사라진다.
여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극의 중심이
되는 영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 이야기들 중에는 할 만한
이야기들이 별로 없다는 말인가?
이런 이슈들을 어떻게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의 수많은 여성들이
처한 크고 작은 불평등과 부당한 현실을
이야기할 때 필요한 언어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어렸을 때는 몰랐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런 질문에 대답을 해준 건
페미니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답을 해주었다.
물론 페미니즘에도 문제가 있고
결함이 있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시시각각 변하는 이 사회를 중심을
갖고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
페미니즘은 나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게 해주었다. 페미니즘은 서로 자기
말만 하려고 아우성치는 이 세상에서도
내 작은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믿음을
갖게 해주었다.
어떻게 하면 이 불완전한 페미니즘과 그것이
할 수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을 서로 조화롭게
만들 수 있을까?
페미니즘이 결함이 있는 이유는 이것이 인간이
만든 운동이고 인간이란 태생적으로 결함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페미니즘에 비이성적으로 높은 기준을
세워 놓고 페미니즘에게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있어 달라고, 혹은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내려 달라고 조르고
있는 것만 같다.
페미니즘이 우리 기대에 못 미치면 페미니즘
이라는 이름 아래 행동하는 인간들에게
결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페미니즘 자체가 잘못되었다며 정리한다.
그동안 페미니즘 운동은 큰 지지 기반을
갖거나 목소리가 크고 선동적인 유명
인사들과 엮이곤 했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소위
이 주의 페미니스트로 선정된
유명 작가나 방송인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철학이 아니다.
적어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최근 페미니즘이 이런 이유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우리는 페미니즘과
그것을 지향한다고 주장하며 자기의
브랜드로 만들려는 여성들을 서로
동일시해 버렸다.
이런 유명인들이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을
하면 그들을 페미니스트 왕좌에 올려놓고
떠받들고 칭송하다가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바로 무대에서 끌어내리며
페미니스트 리더들이 우리를 실망시켰으므로
페미니즘에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고 결론 내린다.
페미니즘과 전문가적 페미니스트를 구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 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단점과 모순으로
똘똘 뭉친 보통의 인간이니까.
나는 페미니스트의 역사에 정통하지도 않다.
설사 원한다 해도 내 책이 주요 페미니스트
고전으로 읽히지도 않을 것이다.
내 관심사와 개인적인 성향과 의견은
주류 페미니즘과 같은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페미니스트가 맞다.
이렇게 받아들이고 나자 믿을 수 없는
해방감이 밀려왔다.
나를 따라다닐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꼬리표는 환영한다.
왜냐하면 나는 인간이니까.
그래서 엉망진창이니까.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
완벽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모든 해답을 갖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전부 옳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내가 믿고 있는 것을 지지하고
이 세상에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내 글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면서도
온전히 나 자신으로 남고 싶을 뿐이다.
핑크색을 사랑하고 섹스를 좋아하고
가끔은 여성을 끔찍하게 표현한 노래에
엉덩이를 흔들기도 하고 때로는 정비공이나
수리 기사에게 마초 대접을 해주면 내게
이익이라는 것을 알기에 일부러 더 멍청한 척을
하는 이런 여자로 남고 싶을 뿐이다.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다.
나는 저 높고 위대한 페미니스트 왕좌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
그 자리에 올라간 사람들은 완벽한
인간 같은 포즈를 취해야 한다.
그러다 한두 번 대차게 말아 먹으면
사람들이 달려들어 가차 없이 끌어내린다.
문제는 나는 허구한날 실수하고 넘어지고
대차게 말아먹는 인간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나는 진즉에 끌어내려졌다고
보면 될 것이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페미니즘을 부인하곤 했다.
나는 왜 여성들이 아직까지도 페미니즘을
부인하고 페미니즘과 거리를 두려다
자기발에 자기가 걸려 넘어지는지 이해한다.
내가 가끔 손사래를 치며 나는 절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한 이유는
페미니스트라고 불리는 것이 마치
인신공격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현실에서 이 단어가 그런 의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 시절 누가 날 페미니스트라고 불렀을 때
최초로 떠오른 문장은 이것이었다.
왜그러지? 나 페미니스트 아니야.
나 남자한테 오럴 섹스 해줄 수 있단 말이야.
그때 내 머릿속에는 페미니스트인 동시에
성적으로 개방적인 여자일 수 없다는 개념이
들어차 있었다. 물론 십 대와 이십 대는
이외에도 온갖 덜떨어진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 들어차 있었던 시기이긴 하다.
나는 페미니즘을 부인했다.
이 운동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페미니스트라는 소리를 들으면
이런 말로 들렸다.
너는 성깔 있고 섹스 싫어하고 남성 혐오에
찌든 여자 같지 않은 여자 사람이야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캐리커쳐는 페미니즘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들, 페미니즘이 성공하면
잃을 것이 가장 많은 사람들에 의해 조작된
이미지에 불과하다.
과거에 사람들 앞에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절대 아니라고 했을 때를 떠올리면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떠올라 부끄러울 뿐이다.
그때 느꼈던 두려움들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
생각하면 또다시 부끄럽다.
결국 내가 외면받을 것이란 두려움이었고
내가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문제나 일으키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란 두려움이었으며
이런 나를 이 사회나 친구들이 받아주지
않을 것이란 두려움이었다.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부정하고 페미니스트라
불리는 걸 거부하면서 페미니즘에서
잉태된 모든 발전과 변화를 지지한다고
말할 때는 솔직히 화가 난다.
이 두 가지를 굳이 분리하려고 애쓰면서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물론 한때 나도 그랬으니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고 언젠가 우리 모두 페미니스트란 단어에
거리를 두지 않아도 될 문화에 살기를
희망하고 있다.
페미니스트가 되었다고 해서 외로워
지지도 않고 남들과 다른 특이한 사람이
되지도 않고 너무 많은 것을 달라고
떼쓰는 사람이 되지도 않으니 걱정할 것 없다.
나는 페미니즘을 되도록 단순하게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페미니즘이 어렵고 복잡한
개념이고 지금도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으며
빈틈도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그저 이렇게 생각할 뿐이다.
페미니즘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도 못하고
그렇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를 믿는다.
여성에게는 자신의 몸을 지킬 자유가 있고
필요할 때는 복잡한 절차 없이 의료 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남녀가 같은 일을 했을 때 동일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선택이기도 하다.
어떤 여성이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지 않다면
그 역시 그녀의 권리이기에 존중한다.
하지만 그녀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 또한
나의 의무이며, 나라면 하지 않을 법할 선택을
하는 여성들을 지지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근본 원칙이라고 믿는다.
나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여성들이 평등과 자유를 쟁취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타문화권 여성들에게
자유와 평등의 모범 답안을 제시할 입장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십 대 후반과 이십 대에서는 페미니즘을
지지하면 매사에 일관적이고 논리정연한
사람으로만 살아야 할까봐 거부했던 것도 같다.
왜냐하면 죽었다 깨어나도 내가 그런 사람이
될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해
배우면 배울수록 소문자의 페미니즘과
대문자로 시작하는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스트 혹은 단 하나의
진짜 페미니즘이 모든 여성 인류를
지배한다는 근본주의 페미니즘의
개념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페미니즘이 어떤 대단한 사상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의 양성
평등임을 안 순간 페미니즘을
받아들이는 건 놀라울 정도로 쉬워졌다.
페미니즘은 우리 사이 교집합을 찾기 위해
우리가 누구이고 어떻게 이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하는지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편이다.
페미니즘은 나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페미니즘은 내가 어떻게 글을 쓰고,
어떻게 읽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도해 주는 원칙이 되어 주었다.
물론 이 원칙을 다 지키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기도 하지만 내가 최고 버전의
페미니스트에 못 미쳐도 괞찮으니 상관없다.
유색 인종 여성, 퀴어 여성, 트랜스젠더 여성도
이 페미니스트 프로젝트에 포함되어야 한다.
과거에 대문자 F로 시작되는 페미니즘은
이 그룹의 여성들을 수차례 배제했다.
아프지만 인정해야 할 사실이다.
어쩌면 이런 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에게서 도망쳐 나와 가능한
멀찍이 떨어져 있으려 했다.
내가 그 입장이기에 충분히 이해한다.
나 또한 페미니즘이 나 같은 흑인 여성이나
나처럼 양성애자였던 적이 있는 한
여성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었다.
역사적으로 페미니즘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권리를 희생해서라도 오직 이성애자
백인 여성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훨씬 더 많은 투자를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못에 잘못으로 대응한다고 상황이
나아지진 않는다. 페미니즘이 실패했다고
해서 페미니즘에 완전히 등을 돌려야 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언제나 끔직한 짓을 저지르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인간애와 정기적으로
의절하지는 않는다.
다만 잘못된 것은 거부한다.
따라서 우리는 페미니즘의 실패를 거부하는
동시에 페미니즘의 성과와 페미니즘 덕분에
우리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인정할 수도 있다.
모두 천편일률적인 페미니즘을 믿어야 할 필요도 없다.
페미니즘은 복수 명사로 그 안에 다양한
페미니즘이 공존할 수 있다.
각자 지지하는 페미니즘을 존중하고 우리 사이의
균열을 최소화하는 데 충분히 신경을 쓰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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