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주의자 선언 > - by 문유식
나는 감히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를 꿈꾼다 현직 부장판사
문유석이 말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
개인주의자 선언
1부 만국의 개인주의자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나라는 레고 조각
나는 그저 이런 생각으로 산다.
가능한 한 남에게 폐나 끼치지 말자.
그런 한도 내에서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것 하며 최대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자. 인생을 즐기되, 이왕
이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남에게도 좀 잘해주자.
큰 희생까지는 못하겠고 여력이
있다면 말이다. 굳이 남에게 못되게
굴 필요 있나. 고정되고 획일적인 것
보다 변화와 다양성이 좋고,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선호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살아 있는 동안 최대한 다양하고
소소한 즐거움을 느껴보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조용히
가고 싶은 것이 최대의 야심이다.
인간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니
과잉 기대도 말고 과장된 절망도
치우고 서로 그나마 예쁜 구석
찾아가며 참고 살자 싶다. 큰 기대
않고 보면 예쁜 구석도 꽤 있다.
이건 결국 자기변명이다. 그래야
남들이 나도 참아줄 테니. 어차피
사람들을 피해 혼자 살 것도 아니
면서 인간의 본질적 한계, 이기심,
위선, 추악함 운운하며 바뀌지도
않을 것들에 대해 하나마나한
소리 하지 말고 사회적 동물로
태어난 존재답게 최소한의
공존의 지혜를 찾아가자.
그게 각자의 행복 극대화에도
최선의 전략일 것이다.
인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쓰고 보니
난 여전히 소년 시절과 다를 바 없이
정 많은 휴머니스트보다는 도구적으로
최소한의 도덕을 찾는 현실주의자다.
그게 한심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훌륭한 소수보다 찌질한 다수가
많은 것이 현실이기에 그 다수의
하나로서 간증하는 거다.
가끔 이런 원래의 성향을 잊고 오버
할 때가 있다. 내가 마치 대단한 존재
라도 된 양 착각에 빠지기도 하고,
세상의 진리를 깨달은 양 개똥철학을
늘어놓기도 한다. 남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심에 자신을 분칠하고
포장하기도 한다.
다행이 내게는 오뚝이처럼 제자리로 돌아와
나 자신을 대면하게 만드는 습성이 하나 있다.
개구리, 박쥐, 곰도 아닌 주제에 겨울마다
활동성이 극히 떨어지고 혼자만의 공간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기 싫은 증세가 나타나
곤 한다. 친구가 보자고 연락해도 이 핑계
대며 안 나가게 된다.
거창한 이유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일조량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체질인 거다. 겨울마다 난 유물론
자가 된다. 태양이라는 외부 에너지
변화에 따라 인간의 의식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몸으로 느끼니까.
좋은 점도 있다. 해가 바뀔 무렵마다
누군가가 리셋 버튼을 눌러주는 것
만 같다. 봄에서 가을까지 의욕, 과잉,
욕심, 탐닉, 집착, 조바심 등이 나도
모르게 조금씩 쌓이다가 겨울의 어느
순간 도대체 왜 그랬었지? 하는 느낌에
그 모든 걸 잊고 만다.
인간관계도 너무 넓혔다는 두려움이
몰려와 덜컥 움츠러들곤 한다. 누군
가를 서운하게 만들기도 한다. 막
공장 출고된 상태로 돌아가는 거다.
세상과 전면적인 관계를 맺고 싶지는
않다가 내 초기 상태다. 사춘기 소년이
아니니까 세상과 일체의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는 아니다. 그건 불가능한
망상이다. 다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싶다.
내 공간을 침해받고 싶지 않은 것이
내 본능이고 솔직한 욕망이다. 누구는
세상으로부터 전면적인 인정, 사랑,
존경을 받고 싶어하고 누구는 세상에
전면적으로 헌신하고 싶어하지만
누군가는 광장 속에서는 살기 힘든
체질이기도 하다. 그걸 죽어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냥 레고
에는 여러 모양의 조각들이 있는 거다.
겨울의 리셋 상태가 안 좋은 점은
자꾸 의미를 따지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의미를 따져 묻기 시작하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세상은 완고하고 인간은 제각기
어리석다. 의미를 따지지 말고
자기만족이라는 뭐든 마음이 가는
대로 자유롭게 움직여야 하는데.
나이를 먹으며 조금
나아지는 것이 있다면 관성의
법칙으로 멈춰 있을 때 조바심
내지 않고 몸을 맡겨두는
여유가 생겼다는 거다.
몸도 머리도 비워서
가볍게 놔두면 또 움직일
동력도 생기기 마련이다.
링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개인주의자로 살다보면 필연적으로
무수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고민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와 다른 타인을 존중해야 하는가.
아니, 최소한 그들을 참아주기라도
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가끔은 내가 양보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내 자유를
때로는 자제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타인들과 타협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과
연대해야 하는가.
결국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목적이고 나머지는 방편이다. 개체로
서는 털 없는 원숭이에 불과한 호모사
피엔스는 무리를 이루어 먹이를 사냥
하고 겨울을 견뎌내며 진화의 고리의
정점에 섰다. 인간에게 있어 타인은 생
존과 번식을 위한 최고의 유용한 자원이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이
라는 종이 서로가 서로에게 늑대이기만
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인
간이 흰개미나 꿀벌과 같다고 말할 수도
없다. 집단, 공동체가 개인에 우선하는
숭고한 유기체고 개인은 이를 위해
기쁘게 헌신하고 희생해야 할
나사못인 것이 아니다.
왼쪽으로든 오른쪽으로든 신의
나라로든, 집단에 대한 헌신을
찬양하며 사람들을 물고 가는
피리 소리는 불길하고 미심쩍다.
인간 세상에 정답은 없고 현실에서
유토피아는 대체로 디스토피아로
실현되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눈
을 부릅뜨고 있어야 한다.
개인의 행복을 위한 도구인 집단이
거꾸로 개인의 행복의 잣대가 되어
버리는 순간, 집단이라는 리바이어
던은 바다괴물로 돌아가 개인을 삼킨다.
집단 내에서의 서열, 타인과의 비교가
행복의 기준인 사회에서는 개인은
분수를 지킬 줄 아는 노예가 되어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사다리 위로 한 칸이라도 더
올라가려고 아등바등 매달려 있다가
때가 되면 무덤으로 떨어질 뿐이다.
행복의 주어가 잘못 쓰여 있는 사회의
비극이다. 고민의 출발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불행할까다.
세계 최빈국에서 경제대국으로 일어선
기적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힘으로 민
주화를 성취하여 평화적 정권교체가
주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총에 맞거나 칼에 찔릴 위험 없이
강남역, 홍대 앞에서 새벽까지
젊은이들이 술 먹고 심지어 길바닥에
쓰러져 자기도 하는 몇 안 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지표로는
적어도 세계 상위 20퍼센트 또는
10퍼센트 내에 드는 장점을 많이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가 싫어서 이민 가고 싶다고들
하지만 세계지도를 놓고 정말로
찬찬히 들여다보면 미국이나 유럽의
열몇 곳을 빼고는 살기 좋다 할 만한
곳이 별로 없다는 것이 유감스러운
인류의 현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인들이 힘들어하며 미래를
불안해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걸
두려워하고, 사회에 절망한다.
물론 그럴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양극화,
빈부격차, 불평등, 취업난, 저성장.
그런데 지구 전체가 겪고 있는 이런
보편적 질환만으로도 힘든데 우리
사회 특유의 체질이 증세를 점점
악화시켜 우리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어 나가고 있다.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
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중고등학교 때 지루하게 배우던
로크, 밀, 몽테스키외, 루소 등의 이름과
함께 나오는, 지금의 서구식 민주주의
근간을 이룬다는 그 개인주의 말이다.
무슨 시대착오적인 소리냐, 19세기
얘기를 21세기에 하고 있냐는 반문이
나올 것이다. 글로벌한 신자유주의
체제가 만악의 근원이라며 앞에
포스트 내지 후기가 붙은 길고 복잡한
대안을 얘기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의문은 이거다.
도대체 우리 사회가 신자유주의 이전에
구자유주의라도 제대로 해본 적이 있는
사회일까? 자본주의 후의 대안을 모색
하기 전에 제대로 된 자본주의라도
해본 적이 있나? 근대적 의미의 개인을
존중해본 경험 없이 탈근대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 아닐까?
이상 < 개인주의자 선언 >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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