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 by 류시화
나무에 앉은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
내가 묻고 삶이 답하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의
저자를 소개하겠습니다.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이후
류시화 특유의 울림과 시선을 담은
신작 산문집.
자기 탐구를 거쳐 삶과 인간을 이해해
나가는 51편의 산문을 묵었다.
<마음이 담긴 길>, <퀘렌시아>,
<찻잔 속 파리>, <마음은 이야기꾼>,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는 이유>,
<혼자 걷는 길은 없다> 등 여러
글들을 페이스북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내가 묻고 삶이 답하다
젊었을 때 나는 삶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졌었다. 진리와 깨달음에
대해, 행복에 대해, 인생의 의미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그 질문들에 삶이 평생 동안 답을
해 주고 있다. 그때는 몰랐었다. 삶에
대한 해답은 삶의 경험들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스승을
찾아 나라들을 여행하고 책들을 읽었
으나, 내게 깨달음을 선물한 것은 삶
그 자체였다. 이것은 우리는 자신이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여행이 우리를 만든다.는 명제와 일치한다.
시인은 다른 시인을 대변할 수 없고, 작가도
다른 작가를 대신 할 수 없다. 모든 시는
존재하지 않는 시였으며, 모든 책은
존재하지 않는 책이었다. 작가든
독자든,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나가는
일이다. 타인의 기대나 정답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답을.
어느 날 삶이 말을 걸어올 때, 당신은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어떤 상실을
겪고 아픔의 불을 통과했다 해도 삶에게
예라고 말할 수 있는가? 계속 거부당해도
삶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는가?
1 퀘렌시아
- 자아 회복의 장소를 찾아서
투우장 한쪽에는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다.
투우사와 싸우다가 지친 소는 자신이
정한 그 장소로 가서 숨을 고르며 힘을
모은다. 기운을 되찾아 계속 싸우기 위해서다.
그곳에 있으면 소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소만 아는 그 자리를 스페인 어로
퀘렌시아라고 부른다.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이다.
퀘렌시아는 회복의 장소이다. 세상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 힘들고 지쳤을 때 기운을
얻는 곳, 본연의 자기 자신에 가장
가까워지는 곳이다. 산양이나 순록이
두려움 없이 풀을 뜯는 비밀의 장소,
독수리가 마음 놓고 둥지를 트는 거처,
곤충이 비를 피하는 나뭇잎 뒷면,
땅두더쥐가 숨는 굴이 모두 그곳이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만의 작은 영역,
명상에서는 이 퀘렌시아를 인간 내면에
있는 성소에 비유한다. 명상 역시 자기
안에서 퀘렌시아를 발견하려는 시도이다.
전에 공동체 생활을 할 때, 날마다 열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아왔다. 지방에서 온 이들은
며칠씩 묵어가기도 했다. 살아온 환경과
개성이 다른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 다행히
집 뒤쪽, 외부인의 출입이 차단된 작은 방이
내게 중요한 휴식처가 되어 주었다.
그곳은 오로지 나만의 위한 공간, 나의
퀘렌시아였다. 한두 시간 그 방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다시 만날
기운이 생겼다. 그 비밀의 방이 없었다면
심신이 고갈되고 사람들에게 치였을 것이다.
내가 만난 영적 스승들이나 명상
교사들도 매일 수많은 사람들과
수행자들을 만나지만 수시로
자신만의 장소에 머물며 새로운
기운을 얻고, 그럼으로써 더 많은
이들에게 가르침을 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영혼의 샘이 바닥난다.
내 삶에 힘든 순간들이 있었다.
그 순간들을 피해 호흡을 고르지 않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부정적인 감정
들로 마음이 피폐해질 수 있었다. 그럴 때
마다 여행은 나만의 퀘렌시아였다. 여행지에
도착하는 순간 문제들을 내려놓고, 온전히
나 자신이 되었으며,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
그러고 나면 얼마 후 새로운 의욕을 가지고
다시 삶 속으로 뛰어들 수 있었다.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퀘렌시아를 안다.
뱀과 개구리는 체온으로 동면의
시기를 정확히 알며, 제주왕나비와
두루미도 매년 이동할 때가 되면
어디로 날아가 휴식할지를 안다.
그것은 존재계가 생명을 지속하기
위한 본능적인 부름이다. 그 휴식이
없으면 생명 활동의 원천이 바닥난다.
인간 역시 언제 일을 내려놓고 쉬어야
하는지 안다. 우리가 귀를 기울이면 몸이
우리에게 말해 준다. 퀘렌시아가 필요한
순간임을. 나 자신으로 통하는 본연의 자리,
세상과 마주할 힘을 얻을 장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장소만이 아니다. 결 좋은 목재를
구해다 책상이나 책꽂이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있으면 번뇌가 사라지고 새
기운이 솟는다.
그 자체로 자기 정화의 시간이다.
좋아하는 공간, 가슴 뛰는 일을
하는 시간,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
이 모두가 우리 삶에 퀘렌시아의
역할을 한다. 소음으로부터 벗어난
곳에서의 명상과 피정, 기도와 묵상의
시간, 하루 일과를 마치고 평화로운
음악이나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밤, 내면세계의 안식처를 발견하는 그
시간들이 모두 퀘렌시아다.
막힌 숨을 트이게 하는 그런 순간들이
없으면 생의 에너지가 메마르고
생각이 거칠어진다.
퀘렌시아라는 단어를 이 책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나도 나만의
퀘렌시아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 하나
만들어 보려고 부단히 노력중이다.
나만의 휴식 공간, 나만의 안식처가
있다면 얼마나 평온하고 자유로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중에 커서는
나만의 공간인 서재를 꼭 가져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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