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심의 철학 > - by 이진우


철학, 의심을 가르치다.

올바른 질문을 제기할 때

비로소 삶이 시작된다.

정답을 의심하라, 의심하지

않으면 질문할 수 없다.




이진우 교수의 공대생을

위한 철학 강의 < 의심의 철학 >

과학도, 정의도, 정치도, 신도

심지어 나의 존재조차도 의심하라


정답을 의심하라: 과학의 시대, 철학의 쓸모


21세기가 과학의 시대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과학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

가면서 부딪히는 많은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한다. 전 세계적 식량 문제는 유전자

변형 식품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하고,

물이 부족한 곳에서는 지구상의 물 중

98퍼센트나 되는 해수를 담수화하는

기술이 대안으로 제시되며, 문명의 발전과

직결되는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기술이 제안된다.


오늘날 과학과 기술은 단지 문제 해결에

만족하지 않는다. 과학과 기술은 인간이

생물학적 존재로서 진화 과정에 예속되어

있는 한계를 극복하려 한다. 우리가 생물학

적 존재이기에 피할 수 없다고 여겼던

생로병사의 한계를 과학과 기술의 힘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출산의 고통을 거치지 않고도 생명체를

만들 수 있는 생명공학, 우리에게 영원한

젊음을 약속하는 반 노화 기술, 인간보다

훨씬 더 뛰어난 인공지능은 인간의 숙명인

죽음 문제도 해결하는 것처럼 보인다. 삶과

사회의 온갖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인류의 오랜 꿈을 실현할 거라는 믿음이

보편화된 21세기는 과학과 기술의 시대다.




그런데 과학이 너무 성공한 것일까? 과학의

시대에 의심과 질문이 사라지고 있다. 과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의심과

호기심 때문이지 않은가. 많은 사람이 당연

하다고 여길 때 왜 그것이 당연한지 의심하고

질문할 줄 아는 사람들이 과학의 시대를 열었다.


우리의 삶을 침식하는 과학의 편의가 강화될

수록 과학을 찬탄할뿐 질문하지 않는 역설.

의심하고 질문하지 않는 찬탄은 우리를

두 가지 의미에서 수동적으로 만든다.

하나는 과학에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과학이 우리에게 번영과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을 뿐 어떤 과학이 인류에게

도움이 될지는 묻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삶에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라는

철학적 질문은 차치하고서라도 우리는

어떤 삶을 원하는가? 라는 질문도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과학이 지배하는 시대는 철학이 필요한

시대다. 우리는 과학과 철학의 불화로부터

출발하여 철학의 정체를 밝히고자 한다.

강단 철학은 쇠퇴하는데 철학에 대한

일반의 기대는 오히려 높아지는 역설적

현상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 시대를

지배하는 과학적 정신과는 달라 삶과

사회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정답이 있다면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지만 정답이라고 제시되는 답에서

문제가 발견될 뿐만 아니라 정답이 본래

부터 없다면, 우리는 의심하고 질문해야 한다.

정답을 의심하라! 의심하지 않으면 질문할

수 없다. 과학도, 정치도, 신도, 심지어 나의

존재 조차도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철학은 과학과는 달리 특정한 분야의 문제와

지식을 다루지 않는다. 철학은 삶 전체를

문제 삼는다. 그런데 삶에는 정답이 없다.

무엇이 좋은 삶인가? 나의 진정한 자아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가? 어떤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인가? 우리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의사 소통할 수 있는가?


공대에서 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면서

부딪힌 어려움은 대체로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학생들이 이런 문제를 거의 접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이런

문제를 대할 때에도 항상 정답을 기대하고

접근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인간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데이터를 처리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개발할 수 있다.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은 21세기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방책일 수 있다.


그렇지만 철학은 과학과 기술이 정답과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출발

한다. 만약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해

노동한다면, 우리는 정말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가?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사회에는 다른 종류의 계급이 발생할

수 있지 않은가? 인공지능이 인간에

게서 빼앗아가는 것이 일자리뿐인가?


이런 질문은 결코 수학적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정답을

기대하고 들어온 철학이 답변은커녕

끝없는 질문만 던지는 것을 보고 실망

하거나 당황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모든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는

과학과 기술의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상 < 의심의 철학 >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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