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 - by 프레드 울만


친구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을 수도 

있다고 말했던 동급생 두 소년의

아름다운 우정과 이별

그리고 충격과 감동의 마지막 한 문장


유럽에서만 매년 10만 부 이상 판매되는

불후의 우정 소설


프랑스, 이탈리아 청소년 필독 도서

일본 학교도서관협회 선정 추천 도서

전 세계 20개 이상 이상 언어로 출간




동급생 1장


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사반세시가 넘는 9천 일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별다른 희망도 없이 그저 애쓰거나 일 한다는

느낌으로 공허한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갔다.


그중 많은 나날들이 죽은 나무에 매달린 

마른 잎들처럼 종작없고 따분했다.


내 가장 큰 행복과 가장 큰 절망의 원천이 될

그 소년에게 처음 눈길이 멈췄던 것이 어느 날

어느 때였는지를 나는 지금도 기억할 수 있다.


그것은 내 열여섯 번째 생일이 지나고 나서

이틀 뒤 하늘이 잿빛으로 흐리고 

어두컴컴했던 독일의 겨울날 오후 3시였다.


그때 나는 슈투트가르에 있던 마르틴 루터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이자 스페인 왕 카를 5세

앞에 섰던 해인 1521년에 설립되었고 

뷔르템베르크에서 가장 이름 높은

학교인 카를 알렉산더 김나지움에 있었다.


나는 세세한 것들 하나하나까지 다 기억하고 있다.


무거운 책상과 걸상이 있던 교실 마흔 개의 축축한

겨울 코트에서 풍겨 나는 시큼한 곰팡내, 눈 녹은

물이 고인 웅덩이들, 전에 한때 그러니까 혁명 이전에

빌헬름 황제와 뷔르템베르크 왕의 초상화가 걸려 있던

자리임을 보여 주는 회색 벽에 남은 누르스름한 선들.


지금도 나는 눈을 감으면 내 급우들의 뒷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중 많은 친구들이 나중에 러시아의

대초원이나 알라메인의 사막에서 목숨을 잃기는

했지만, 지금도 나는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라는

형을 선고받고 자신의 운명을 슬픈 체념으로 

받아들였던 치머만 선생님의 피곤에 절고

환멸에 찬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는 머리칼과 콧수염 뾰족하게 깎은 턱수염이

모두 희끗희끗해져 가는 혈색이 좋지 못한

남자였고, 먹을 것을 찾는 잡종 개 같은

표정을 하고서 코끝에 걸친 코안경 너머로

세상을 내다보았다.


그의 나이는 아마도 쉰을 넘지 않았겠지만

우리에게는 그가 여든은 되어 보였다.

우리는 그가 친절하고 조용했기 때문에

그에게서 가난의 냄새 그의 두 칸짜리

셋집에는 아마 욕실도 없었을 것이다가

났기 때문에 그가 가을과 긴긴 겨울 동안

누덕누덕 깁고 닳아서 반들거리는 

푸른색 양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얕잡아 보았다.


그래서 경멸하는 투로 때로는 힘센 

아이들이 떼거리로 힘없고 늙고 

무방비인 사람들에게 보이는 그런

비겁한 잔임함으로 그를 대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등불을 켜야

할 만큼 그렇게 어둡지는 않아서 나는

여전이 창문 너머로 수비대 교회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 교회는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볼꼴 사나운 건물이었지만 이제는

납빛 하늘을 꿰뚫은 두 탑이 하얀 눈으로

덮여 아름다워 보였다.


내 고향 도시를 둘러싼 하얀 언덕들도

아름다웠고 그 너머로는 세상이 끝나

신비한 불가사의가 시작되는 것 같았다.


교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이어 치머만

선생님이 미처 들어오세요라고 하기도

전에 클레트 교장 선생님이 들어왔을 때

나는 비몽사몽 중에 졸았다 깨었다 하면서

어떻게든 깨어 있을 셈으로 이따금씩

머리칼을 하나씩 뽑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쑥한 작은 남자를

보지 않았다. 모두의 눈길이 파이드로스가

소크라테스를 따르듯 그를 따라 들어온

낯선 아이에게로 향하고 있어서였다.


우리는 마치 유령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그를 쳐다 보았다. 무엇보다도 나를 그리고

아마도 우리 모두를 기죽게 한 것은 그의

자신만만한 태도보다도 귀족적인 분위기보다도

은근슬쩍 젠체하는 미소보다도 그의 우아함이었다.


우리는 모두 옷차림에 관해서라면 처량 할 정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또 우리 어머니들도

대부분은 질기고 오래가는 천으로 만들어진

것이면 무엇이든 학교에 입고 가기에 족하다고 여겼다.


우리는 그때까지 아직 여자아이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고, 그래서 우리가 옷보다 더 크게

자랄 때까지 버텨 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구입한 재킷과 짧은 바지 또는 승마용

반바지 같은 기능적이고 오래가는 

옷가지들을 걸치는 것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이 소년은 달랐다.


그는 우리들의 옷처럼 빨래집게에서푸

떼어낸 게 아닌 것이 분명한, 멋지게

재단해서 주름을 잡은 긴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의 양복은 비싸 보였다.


헤링본 무늬에 밝은 회색으로 거의 틀림없이

보증된 영국제였다. 또 연푸른색 셔츠에

작은 흰색 물방울무늬가 박힌 감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는데 우리들 목에

둘린 것은 그와는 대조적으로 더럽고

기름때가 낀 노끈 같은 것이었다.


비록 우리가 우아해지려는 그 어떤 시도든

모두 계집애 같다고 여겼음을 인정하더라도

우리는 그의 여유로움과 차이를 부러운

눈으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클레트 교장 선생님이 곧장 치먼만 선생님에게로

다가가서 귀에다 대고 무슨 말인가를 속삭이고는

우리의 눈길이 새로 전학 온 아이에게 쏠려 있는

사이 눈에 띄지 않게 사라졌다.


그 아이는 긴장하거나 수줍어하는 기색이라고는

없이 미동도 않고 태연하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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