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인간> - by 헨미 요


탐식의 시대, 식의 본질을 묻다


가난한 아시아의 맛, 갈등하는 유럽의 맛

뜨거운 아프리카의 맛, 얼음과 불이 빚은 혼돈의 맛

가깝지만 낯선 한국의 맛.


생의 음식을 찾아 이방의 도시를

떠돈 2년간의 기록



저널리즘과 문학이 아름답게 결협한 명저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 헨미 요.

그가 이방의 도시에서 건져 올린 장대한 식의 인간 드라마


먹다라는 주제로

생의 근원을 탐구한 불후의 명작


1장 가난한 아시아의 맛


먹다 남은 음식을 먹다


땅거미가 질 무렵 다카 역 주변을

정처 없이 걷고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고 땅에서도 솟아오르는

듯한 갈색 사람과 릭샤(자전거로 끄는 인력거)의

홍수에 떠밀리고 겁에 질려서.

길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팔 소리에 이끌려 왔다.


이때까지 내 혀와 위는 밤마다 이어지는 송별회에서

먹은 최고급 스시나 샤브샤브의 맛을

끈질기게 기억하고 있었다.

미련이다. 기억을 지우고 싶다.


냉이만 자라 있는 선로를 건너 남쪽의

치타공 역을 향해 갔다.

뜨뜻미지근한 바람이 불면서 짐승 냄새,

카레 향, 개골창의 악취가 한꺼번에

코와 입을 덮쳤다.


값비싸고 고급스러운 일본 맛의 기억이

그것으로 날아가 버렸다.


짐승 냄새 너머에는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의 서커스 천막이 있었다.

나팔 소리를 내는 곳이었다.


천막 옆 빈터부터 선로를 따라 끝도 없이

해초 같은 것이 들어붙어 있다.

작은 나뭇가지로 만든 기둥에 누더기만

걸친 슬럼가 오두막촌이다.


카레 향은 이곳에서 풍겨 나왔다.


가냘픈 연기 몇 줄기가 땅바닥에서

피어오르고 있다.

어디에선가 주워 온 돌을 화덕으로

삼아 사람들이 음식을 만든다.


발가벗은 아이들이 쓰레기를 주워다

화덕에 불을 지피고, 반쯤 벗은 아버지가

화덕에 꼬챙이를 쑤셔 넣어 불길을 올린다.

때가 덕지덕지 낀 사리를 입은 어머니는

황토색 달(카레 맛이 나는 콩 수프)이 든

냄비 안을 휘젓는다.


시장에서 주워 왔는지, 닭발 몇 개만 넣어

끓이는 여자도 있다.

땅바닥 위에서 한 치도 안 떨어진 필사의 요리.

식탁은 없다. 고기도 없다. 똘까리(카레)안에는

돌멩이 같은 말린 생선뿐.


땅바닥에 앉아 서커스 천막 위로 떠오른

새하얀 초승달을 바라보고 나팔 소리를

들으면서 그걸 손으로 척척 움켜 집으며 먹는다.

때때로 멀리서 짐승 울음소리가 들린다.


짐승 울음소리에 나도 허기를 느꼈다.

역 앞 광장의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지름이 70센티미터쯤 되는 커다란

양철 쟁반에 수북이 쌓인 브리야니(볶음밥)와

밧(흰 밥)에 식욕이 솟아올랐다.

한결같이 뼈에 붙은 닭고기와

양고기가 듬뿍 쌓여 있다.


옆에서는 녹색 선향 대여섯 개가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작은 코에 금색

장신구를 박아 넣은 아가씨가 브리야니는

4타카(1타카는 약 15원이다.) 밧은 5타카라고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적은 돈으로 먹을 수 있다니

신이 난 나는 비싼 쪽을 주문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첫 번째 식사다.

그에 걸맞게 이곳 관습대로 오른손

손가락만 써서 먹어 본다.


익숙해지면 혀뿐만 아니라

손가락도 맛을 느낀다고 하지 않나!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접시의

접시의 밥으로 쭈뼛쭈뼛 손을 갖다

대니 어이쿠,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싸니까 불평할 수는 없다.

엄지손가락, 집게손가락, 가운뎃손가락,

거기에 넷째손가락까지 동원했지만 서투른

탓에 꼴사납게도 밥알을 줄줄 흘리고 만다.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입안 가득히 밥을 넣고 씹었다.

희귀 동물이 먹는 모습을 관찰이라도 하듯 가게의

아가씨와 구경꾼 들이 내 손가락과 입이

움직이는 모습을 뚫어져라 본다.


인디카 쌀치고는 찰기가 없다.

찌르르 하고 혀끝을 톡 쏜다.

물기가 있다. 그래도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


쌀 문화는 역시 좋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두 입, 세 입 잇따라 먹었다.

그리고 뼈에 붙은 고기를 입으로

가져가려고 할 때였다.


잠깐 갑자기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먹다 남은 음식이에요.

더듬거리는 영어가 이어졌다.

자세히 보니 고기에는 분명 베어 문 자국이 있었다.

밥도 이미 누군가의 오른손에 짓눌린 듯했다.

선향은 썩은 냄새를 없애려고 피운 것이다.


내가 접시를 내려놓았다. 그 순간 마치 말린

고기처럼 가느다란 팔이 옆에서 불쑥 들어오더니

접시를 빼앗아 갔다. 열 살쯤 되는 소년이다.

돌아보니, 쩍 벌어진 입으로 뼈에 붙은 고기를

덥석 뜯어 물며 주위는 아랑곳하지도 않았다.


내게 충고한 사람은 모하메드 샤무스,

눈이 매처럼 생긴 남자였다.

서른 살이다. 호텔 종업원이었는데 지금은

실업 중이라고 한다. 걸으면서 모하메드가 말했다.


다카에는 부자들이 남긴 음식을 파는 시장이 있어요.

음식 찌꺼기 시장이죠. 도매상, 소매상도 있어요.

입에서 신물이 줄줄 솟아올라 나는 연신 침을 뱉어 냈다.


도쿄에서는 매일 50만 명의 하루치 식사량에

버금가는 음식 찌꺼기가 아무렇지 않게 버려지고 있다.

다카에서는 음식 찌꺼기가 인간의 식사로 팔리고 있다.

신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치가 절정에 다다르고

결국 언젠가는 그 모습이 뒤바뀌어 버리지 않을까?

도쿄에서 음식 찌꺼기를 먹는 날이..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음식 찌꺼기 리사이클은 내 눈으로 좀 더

확인해 보고 싶었다. 모하메드가 안내를 맡아 주었다.

이 남자는 아직 오기로라도 먹다 남은 음식을

먹지 않았지만, 음식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금요일 밤.

나와 모하메드가 도심의 다카 레이디스 클럽이라는

건물 앞에 있는 나무 뒤 그늘에 숨었다.

안에서 왁자지껄 웃는 소리가 들렸다.

결혼 피로연이다.


떠들썩한 소리가 가라앉았다.

드디어 웨이터가 건물 뒤편으로 먹다

남은 음식이 그대로 놓여 있는 탁자를 들고 나왔다.

사리를 입은 여자 다섯 명이 비닐 봉투를 들고

어디에선가 나타나 그곳으로 그림자처럼 다가갔다.


그리고 한껏 부풀어 오른 봉투를 든 채 줄지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다들 왜 그런지 어깨를

움츠리고 살금살금 움직였다.


주로 목요일과 금요일에 음식 찌꺼기가 출하돼요.

이슬람교도가 이 날 결혼식을 올리는 걸 좋아하거든요.

모하메드가 속삭였다.


피로연에서 먹다 남은 음식이 상품화된다는 것이다.

부자들이 제례를 치르는 때도 가난한 사람에게는

음식이 유통되는 날이다. 예식 주최자는 남은 음식을

기꺼이 내놓지만, 웨이터가 미리 연락한 음식 찌꺼기

중개인에게 파는 경우도 있다.


어둠 속으로 사라진 여인들은 다카 역

앞과 경기장 역전 광장, 페리 선착장 앞 등

4대 음식 찌꺼기 시장에서 소매상이나 도매상을 한다고 한다.


우리는 수도 남쪽 부리강가 강의 페리 선착장으로 갔다.

뱃전이 부풀어 오른 것처럼 보일 정도로 승객으로 꽉 찬

페리가 몇 척이나 정박해 있다.


차파티(발효시키지 않은 빵), 튀김, 과일을 파는

사람들이 밀치락달치락하며 북적거리는 선착장

앞길에서 음식 찌꺼기를 팔고 있는 검은 옷의

노파를 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고기가 붙어 있는 먹다 남은 브리야니가

큰 냄비에 들어 있었다. 한 접시에 얼마냐고 물으니

걸걸한 목소리로 2타카라고 했다.

얼마 전 내가 먹은 밧보다 3타카나 싸다.

코를 갖다 대니 살짝 시큼한 냄새가 났다.


모하메드가 귀에 속삭였다.

어제나 그저께 열린 피로연에서 나온 음식일 겁니다.

신서도에 따라 가격은 더 싸져요.

그래도 릭샤 운전사 두 사람이 땅바닥에 웅크리고 앉아서

그 브리야니를 우걱우걱 먹고 있었다.


음식 찌꺼기의 주된 소비자는 빈민촌에

사는 사람들이거나 20만 명 이상으로 알려진

릭샤 운전사의 일부라고 한다.


새로 나온 브리야니를 먹으려면 최소한

15타카는 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된

것을 먹으면 크게 절약이 된다.


토요일 저녁에는 경기장 역전에서

음식 찌꺼기 장수를 보았다.

이상 <먹는 인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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