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트 대신 부동산에 간다> - by 김유라


평범한 주부에서 월세 받는 여자가 되기까지

은행이 아닌 아파트로 적금을 부어라

대한민국 대표 재테크 고수들이 추천하는

<나는 마트 대신 부동산에 간다>

열혈 주부의 절대 실패하지 않는 부동산 소액투자법





복부인 김유라의 소액투자로

10배 빠르게 부자 되는 법


전세가가 미쳤다

부동산은 끝났다더니


어려서부터 전업주부가 꿈이었던 나는

대학 시절 만난 지금의 남편과 2006년

스물네 살 때 결혼했다. 남편도 나도

모아놓은 돈이 없었던 터라 시가의

도움으로 대전에 8,500만 원짜리 전세

아파트를 얻어 신접살림을 차렸다.


도어락도 새로 달고 내부 수리도 좀

하고 신혼집답게 예쁘게 꾸민 아파트에서

첫아이를 낳고,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주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월세로 전환하려 하니 계속 살 작정이면

다달이 50만 원을 내고 아니면 나가라는

통보였다. 같은 아파트의 전세가가 2년이 채

안 돼 3,500만 원이 올라 1억 2,000만 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계약 만기가 되면 전세금을 올려줘야겠구나

정도의 각오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집주인이

월세로 전환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지라

당황스러웠다. 우리의 첫 보금자리였기에

직접 꾸미고 틈나는 대로 쓸고 닦아 늘

반짝거리던 집이었다. 이곳에서 가능한

한 오래 살고 싶었지만, 눈물을 머금고

이사를 해야 했다. 집이 깨끗하고 예뻐

다음 세입자가 단번에 들어온 것은

다행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화가 나기도 했다.

남 좋은 일만 시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시 한 번 시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이사를

간 곳은 전세보증금 1억 1,000만 원짜리

아파트였다. 그런데 1년이 지나자 전세가가

1억 8,000~9,000만 원으로 올랐다.

둘째를 임신 중이던 나는 더럭 겁이 났다.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아직 말도 잘 못 하는

첫째와 젖먹이를 데리고 또 이사를 가야

하겠구나. 그러지 않으려며 남은 1년 안에

7,000~8,000만 원을 마련해야 하는데

어디서 그 돈이 나온단 말인가.

어떻게 1년 사이에 그만큼이나 오를

수 있는지, 말 그대로 미친 전세가였다.


당시 대전은 전세가 매우 귀했다. 대전

엄마들 커뮤니티에 들어가보면 다들

전세가 없다고 난리였다. 부동산중개소에서

전세가 나왔다고 연락이 와 집도 보지 않고

바로 계약금을 넣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세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계약금부터

넣고 집을 보러 갔더니 집 상태는 엉망이고

하지만 이미 계약을 했기 때문에 집주인은

도배나 장판을 새로 해줄 생각도없다.


속이 쓰리지만 워낙 전세가 귀하니 어쩔

수 없다는 내용의 글이 넘쳐났다. 내 친척

한 분도 부동산중개소에서 연락이 와 집을

보러 나섰는데, 도중에 다른 사람이 계약했

으니 올 필요 없다는 전화를 받고 발길을

돌린 적이 있다고 했다. 결혼할 때 집을 사지

않은 것이 뼈저리게 후회되었다. 2006년에

집을 샀어야 했다. 그때 집을 사지 않은 이유는

아파트는 이제 오를 대로 올랐다, 앞으로

떨어질 일만 남았다, 지금 집 사면 안 된다는

말들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단지 그 이유로

전세로 집을 얻은 것인데, 서울은 상황이

좀 달랐을지 모르지만 지방은 집값이

계속해서 오르기만 했다.


2006년이 아니라면 월세를 낼 수 없어

이사를 선택한 2008년에라도 집을

사야 했다. 그때는 펀드가 반 토막 나기

바로 직전이었다. 당시 펀드를 환매해

전세보증금에 보탰다면 각종 공공기관이며

대형 쇼핑시설, 넓은 공원이 자리하고 학군도

좋은 대전 둔산의 30평대 아파트를 대출 없이

구입할 수 있었다.


반 토막이 된 내 펀드


펀드 투자를 시작한 것은 은행에

근무할 때였다. 전업주부가 꿈이었지만

직업을 가진 배우자를 원하는 남편과

결혼하기 위해 대학 졸업 후 구직 활동을

시작했다. 스펙도 능력도 없던 내게 직장이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줄 리 만무했다.

이곳저곳을 뒤지던 어느 날, 취업 사이트에서

국민은행 계약직 모집 공고를 보고 별 기대

없이 지원서를 넣었다. 워낙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경쟁률이 어마어마할 것 같긴 했지만, 일자리의

선택권이 거의 없는 대전에서도 지원이 가능해

일단 지원해본 것이다. 그런데 서류 전형에 덜컥

합격해 면접시험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우선 입고 갈 정장이 없었던 터라 온라인

오픈마켓에서 3만 원짜리 정장 한 벌을

구입했다. 면접 지원금으로 3만 원이 나온다니

불합격해도 손해는 아니라는 계산이었다.

그러고 나니 면접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가 숙제로 남았다. 공대 출신인

데다 가뜩이나 공부하기 싫어했던지라

경제나 금융에 관해 아는 게 없었다.

고민 끝에 결국, 국민은행 CM송인

김세환의 <사랑하는 마음>을 외웠다.


아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니

노래라도 부르자고 나름대로 면접

시험 대비를 한 것이다. 면접장에

도착해서 보니, 무슨 스튜어디스

면접인가 싶을 정도로 키 크고

예쁜 지원자들이 수두룩 했다.

그 속에서 나는 단체면접을

기다렸다. 이윽고 차례가 되자

면접관이 각자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다.

나는 다짜고짜 노래부터 불렀다.

저는 김유라입니다. 휴대전화 판매왕인

어머니를 닮아 영업 잘하겠다는 소리를

어려서부터 많이 들어왔습니다. 손님이

끊임없이 들어오는 국민은행에서 제

영업의 꿈을 펼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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