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도시> - by 올리비아 랭


365일 책을 소개하는

Stories Book입니다.


오늘 소개 드릴 책은

<외로운 도시>라는 

인문학 도서입니다.


지금 외롭다면

이건 당신을 위한 책이다.


뉴욕의 예술가들에게서

찾은 혼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


사람은 어디서든 고독할 수 있지만

도시에서 수백만의 인간들에게

둘러싸여 살면서 느끼는 고독에는

특별한 향취가 있다.



이 책 <외로운 도시>는

현대인의 회복될 여지가 없는 

만성 질병인 고독을 탐사한다.


올리비아 랭은 30대 중반에

사랑을 좇아 뉴욕으로 이주했지만

하루아침에 실연을 당하고 

철저히 혼자가 된다.


고립감, 우울, 피해망상으로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던

그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릠에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단서를

발견하고 뉴욕을 살아낸 

예술가들의 작품과 삶 속으로 

빠져든다.


고독을 끌어안고 고독에 저항했던

예술가들, 그들은 도시라는 공간이

만들어내는 기이한 고립감, 이민자,

성적 소수자들에게 대한 낙인,

가난, 학대, 섹스, 에이즈, 죽음 같은

극복하기 어려운 고독의 원천들로부터

예술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탄생시켰다.


고독이라는 도시에서 

길을 잃었을 때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타인이 아닌 예술이었다.


차례

1. 외로운 도시

2. 유리벽

3. 그대의 목소리에 내 마음 열리고

4. 그를 사랑할 때

5. 비현실의 왕국

6. 세계의 끝. 그 시작에서

7. 사이버 유령

8. 이상한 열매 




1. 외로운 도시


한밤에 빌딩 6층이나 17층,

아니면 43층 창가에 서 있다고

생각해보라.


도시는 세포의 집합처럼 보인다.


어두운 곳도 있고, 

초록색, 흰색, 금색의 불빛이

쏟아지기도 하는 수십만 개의

창문을 가진 세포 집합.


그 안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흘러 다니고

저 마다 볼일을 본다.


그들은 내 눈에 보이기는 하지만

가까이 가닿을 수는 없다.


세계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이 공통적인 현상으로서의 도시는

아주 사교적인 사람에게도 

고독의 전율을, 격리와 노출이

복합된 불편한 감각을 전해준다.


사람은 어디서든 고독할 수 있지만,

도시에서 수백만의 인간들에게

둘러싸여 살면서 느끼는 고독에는

특별한 향취가 있다.


도시에서는 많은 인간이 무리지어

살게 마련이므로 그런 곳에서의

삶은 고독과 완전히 반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단순히 신체적으로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는 내적인 고립감을 

밀어내기에 부족하다.


타인들과 어깨를 비비듯 가까이

살면서도 황량하고 홀로 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으며


오히려 그런 기분을 더 쉽게

느낄 수도 있다.


도시에서 사람들은 외로워질 수 있는데

이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우리는 

물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어야만

고독이 느껴지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된다.


오히려 서로 연결되고 가까운

관계나 친족들이 없는 상태,

또는 있어도 아주 소원한 상태,


즉 어떤 이유에서건 원하는 만큼의

친밀감을 찾지 못하는 상태가

고독의 여건일 수 있다.


사전적인 정의에 따르면 고독은

타인들과의 교제가 없음에서 

비롯되는 불행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군중 속에서 

고독의 극치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해서 이상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고독은 털어놓기 힘든 문제다.

범주화하기도 힘들다.


우울과 고독은 공통분모가 많은데

두 가지 모두 한 인간의 심연 속

깊이 파고든 것일 수도 있다.


뭔가를 빼앗겼을 때,

교류하는 사회집단이 

바뀌거나 연애가 깨졌을 때

그 후유증으로 따라오는 것

처럼 말이다.


우울, 멜랑콜리나 불안감처럼 

고독 또한 의사의 관심 대상이되어

병으로 다뤄진 주제다.


고독에는 아무 목적도 없다고들

강력하게 주장해왔지만,

사회과학자 로버트 와이스가 

이 주제를 다룬 획기적인 연구에서

말했듯이, 그것은 회복될 여지가

없는 만성 질병이다.


이런 발언은 우리의 모든 목적이

짝을 찾는 데 있다거나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거나 하는 믿음과

평균 이상으로 묵직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운명은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공통된 삶에서 겪는 

어떤 체험도 전혀 무의미할 수 

없고, 어떤 종류건 가치와 풍요로움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1929년의 일기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의미심장한 분석 주제인 

내적 고독이라는 것을 

서술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 감정을 붙잡을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하겠다.


살아갈 만한 세계에서 내몰려

침묵에 잠길 때, 현실 세계를 

노래하는 감정을 붙잡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


고독이라는 감정이, 그것 아니면

결코 접할 길 없었을 현실의 

경험으로 우리를 데려다준다는

생각은 무척 흥미롭다.


한동안 뉴욕 시내에서

지낸 적이 있다.


편마암과 콘크리트와 유리의

북적이는 섬, 고독이 일상적으로 

지배하는 도시 


절대로 편안한 경험은 아니었지만,

나는 울프의 말이 틀린 게 아닌지,

체험에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은

없는 게 맞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혹시라도 살아 있다는 게

무엇이냐는 더 큰 물음을 

조금이라도 곰곰 생각하게

하지는 않는지.


픽셀로 분할된 시대에 사적인

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우리 세기의 시민으로서도

내게서 소진돼버린 것들이 있었다.


외롭다는 게 무슨 뜻일까?


우리가 타인과 직접 가까이 

개입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까?


우리는 타인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특히 말을 쉽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섹스가 고독의 치유제인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병에 

걸렸거나 미모의 소유자가

아닐 경우 우리의 신체나

성은 비정상적이고 손상된 

것으로 간주될까?


이런 경우에 테크놀로지는

도움이 되는가?


그것은 우리가 가까이 

모아주는가.

아니면 스크린 뒤의 

함정에 빠뜨리는가?


이런 문제에 혼란을 느낀 사람은

절대 나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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