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 by 안광복


서양의 대표 철학자 40인과 시작하는

철학의 첫걸음


철학자를 알면 철학이 쉬워진다.


탈레스부터 가다머까지

읽다 보면 손에 잡히는 철학의 모든 것



서문


철학으로 가는 첫걸음


첫 담임교사 시절, 나는 아이들과 참 많이도 싸웠다.

아이들은 우주만큼이나 이해하기 힘든 존재들이었다.


넥타이까지 매는 정장 스타일의 교복, 그런데도

왜 아이들은 죽어라고 와이셔츠 꽁무니를 내놓고

다닐까? 바지도 그렇다.

줄여서 엉덩이 선이 드러날 정도로 꼭 맞아야 만족이다.


그러면 무지 불편할 텐데도 말이다.

자기를 괴롭히는 아이와 짝하고 싶다는 친구들은

또 뭐란 말인가. 아이들과 함께한 하루하루는

두더지 잡기 게임 같았다.


한 녀석의 문제를 잡으면 다른 아이에게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그 아이가 저지른 일을

수습하면 다른 쪽이 엉망진창이었고.


그 후로 십 년이 흘렀다. 나는 여전히 학급을 맡고 있다.

물론 두더지 잡기 게임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내게 아이들은 이해하기

힘든 존재가 아니다.


문제를 풀려면 문제만 바라보지 마라.


못이 박이도록 선배 선생님들의 충고다

아이의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을 고치고 싶은가?

손톱을 깨무는 습관 자체에 매달리면 결과는

100퍼센트 실패다. 벌주고 야단칠 때는 잠깐

그치겠지만, 조금만 관심이 소홀해져도 아이의

손톱은 다시 입술에 가 있을 테니까.


문제를 잡으려면 아이 전체를 바라보아야 한다.

아이가 불안한가?

부모와의 사이는 좋은가?

성적은 기대만큼 나온는가?

제일 큰 고민은 무엇인가?

하나하나 살피며 학생과 함께 고민을 갈무리하다 보면,

어느새 손톱 물어뜯는 습관은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손톱이 맛있어서 쩝쩝 씹어 대는 사람은 없다.


이런 행동은 마음에 쌓이고 썩은 고민들이

바깥으로 나타난 증상일 뿐이다.


그러니 문제를 풀려면,

문제만 바라 보지 마라.

사람을 알면 이해 못할 문제는 없다.

문제가 이해되면 답도 저절로 얻어질 테다.


담임교사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이 교훈은

철학에도 통한다. 

철학자들은 참 이해하기 힘든 존재들이다.


이들은 별 쓸데없는 문제에 매달린다.

말은 또 왜 그리 어려운지.

존재, 본질, 형상, 보편자, 일자, 타자 등등

낱말만 들어도 울렁증이 인다.

이런 생각으로 화가 치미는 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권하고 싶다.


철학을 알려면 철학만 바라보지 마라.


문제를 모르면 답도 못 찾는다.

철학 사상을 이해하고 싶다면 철학자들의

삶을 먼저 꼼꼼하게 살펴보자.


그리고 철학자들이 왜 그런 고민을

했는지를 캐물어 보라. 그들의 고뇌를

내 고민처럼 느끼고 아파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철학은 나에게 의미를 있는 무엇이 된다.


철학자들의 사생활을 꼼꼼하게 되짚어 보자.

괴짜 같은 철학자들도 실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인정받고 싶어 하고, 사랑을 꿈꾸며,

괴팍한 부모 때문에 고민한다.


때로는 변화를 꿈꾸기도 한다.

내 가슴속 고민을 철학자들의 삶 속에서 찾아보라.

짝사랑에 마음 태운다면, 키르케고르가 어떻게

연애했는지 알아보자.


교회 나가라고 들들 볶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짜증이 벌컥거린다면 아우구스티누스를 읽어라.


철학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아, 그래 이건 내 고민과 똑같아 라고

느껴지는 순간, 그때가 바로 나의 철학의 출발점이다.


비로소 철학이 내 삶에 쓸모 있는 무엇으로 다가올 것이다.

나는 이 책을 그런 밑그림 위에서 썼다.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에 등장하는 철학자는 모두 38명이다.



1부

신이 숨 쉬는 세계,

인간의 길은?


탈레스에서 토마스 아퀴나스까지


철학의 출발

탈레스

발밑의 웅덩이도 못 보는 사람


탈레스는 흔히 철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은 한 분야에서 가장

존경받는 원조이게 마련이다. 탈레스도 그렇다.


탈레스는 살아 있을 때 이미 고대 그리스의

7현인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유명인의 우스꽝스러운 실수는 재미있는

화젯거리가 되는 법. 철학의 아버지는 탈레스도

오늘날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위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우주의 이치를 탐구하느라 하늘을 보면서 정신없이

걷다가, 그만 발밑의 웅덩이를 미처 보지 못하고

꼴사납게 넘어지고 만 것이다.


이것을 본 트라키아 출신 하녀가 큰 소리로 비웃으며 말했다.


-우주의 이치를 탐구한다는 분이 발밑의 웅덩이도 못 보다니요.


철학의 아버지가 완전히 스타일 구긴 이 일화는

고상한 문제에만 매달리느라 현실에는 어두운

철학자들을 비판할 때 흔히 인용된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 이야기를 오히려

철학자들의 진정한 면모를 내세우려고

자랑스럽게 소개하곤 했다.


발밑의 웅덩이도 보지 못했던 탈레스처럼

철학자란 재판이나 흥정, 일상의 세세한

일에는 어수룩하고 둔한 사람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삶과 세계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이 같은 고민을 통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삶을 더 가치 있고 보람 있게 만든다.


무작정 아무 직장이나 들어가기보다.

자신의 삶과 목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직업을 고를 때 더 많은 것을 얻듯이 말이다.


따라서 철학은 오래전부터 엘리트들이 배우는

필수 과목이 되어 왔다. 철학은 작은 이익에

매달린 나머지 삶의 근본적인 가치와 의미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 준다.


크고 넓게 세상의 의미를 탐구하고

바람직한 삶의 방향을 찾는 작업


탈레스는 이러한 철학의 임무를

삶을 통해 보여 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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